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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18. 2020

층간소음 따뜻했던 날

아랫집이 이사를 갔다. 입주한 지 1년이 지나니 이사 가는 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어떤 집은 층간소음 때문인 경우도 있었다. 집에서 뛰지 말라고 주의를 줘도 도저히 안 뛰고는 못 배기는 네 살 아들을 둔 엄마는 이럴 때 작아진다. 혹시나 아랫집이 이사 가는 이유도 층간소음 때문일까 마음이 쓰였다. 부디 다른 이유이길 바랐다.

부산으로 이사와 처음으로 살았던 신혼집은 오래된 아파트였다. 층간 소음이 문제가 되려면 하루에도 수백 번 문제 삼을 수 있는 집이었다. 이사한 첫날 방에 누워 들은 소리가 윗집 아저씨 코 고는 소리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거실에 나와 있으면 옆집, 윗집에 누가 들어가고 나가는지, 주방에서 마늘을 찧는지, 아이들이 구슬 놀이를 하는지 모조리 알 수 있었다.

율이가 태어나고 한동안 밤마다 잠이 깨면 앵앵 울어댔다. 한밤 중이라 이웃 사람들이 잠을 설칠까 걱정이 되었다. 아이를 울리지 않을 방법이 없어 양해라도 구해야 할 것 같았다. 시장에서 사 온 인절미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할머니 두 분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한참만에 동생 할머니가 나오셨다. 떡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할머니, 혹시나 밤에 저희 아기 우는 소리에 시끄럽지 않으세요?”
“응, 아기 우는 소리가 나길래 새댁이 애 낳고 집에 왔구나 했지-“

“잠 설쳐서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그런 말 마라- 애 우는 소리가 얼마나 좋노-“

“그래도 밤에 주무실 때 시끄러울까 걱정이 돼서요-“
“노친네 둘이 사는 집이 썰렁한데 아기 소리 들으니 좋아, 마 걱정 마라-“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괜찮다는 손사래가 어깨를 다독이는 것만 같았다. 한밤중에 잠 깬 율이가 앵앵 울 때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초보 엄마의 어눌함 만으로도 하루가 힘겨웠는데 할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율이를 더 잘 돌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은 율이를 안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윗집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생 꼬맹이들이 집에 돌아왔는지 한바탕 우당탕탕 거리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노랫소리가 들렸다. 맞벌이 부부를 대신해 아이들의 할머니가 오후에 들르시곤 했다.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자주 노래를 불러주셨다. 그 노래를 자장가 삼아 율이를 재웠다. 할머니 소리가 좋은지 율이는 깨지 않고 달게 잤다.

어느 집에서 손님맞이를 해도, 청소기를 돌려도 그러려니 했다. 따뜻한 귀를 가진 이웃들이 사는 집이 좋았다. 

새집으로 이사 와서는 방음이 그나마 잘 돼서 이웃의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 가끔 발 콩콩 걸어가는 소리나, 뭔가 물건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체온 담긴 목소리가 아닌 둔탁한 울림들이다. 그 소리에 누군가 함께 살고 있구나 생각한다. 살아가기에 소리가 난다.  칸칸이 따뜻한 조명이 켜진 집들에 오늘도 저마다 소리가 가득하겠지. 새어 나오는 노란 조명만큼 따뜻한 소리들이었으면 좋겠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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