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에서 깨면 거실 커튼을 걷으며 날씨를 확인한다. 강 넘어 동네가 보이지 않을 만큼 뿌옇다. 미세먼지 가득한 날이라 아이와 종일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겨울이라도 놀이터에 가고 싶은 아이는 자꾸만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댄다.
우리는 밖에 나가지 않는 날이 많았다. 비가 내려서, 먼지가 많아서, 너무 추워서 또 너무 더워서. 올 겨울에는 아이와 자주 밖에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두툼한 벙어리장갑도 준비하고 따뜻한 겨울 패딩과 부츠도 준비해 두었다. 눈이 오길 기다렸다. 동화책 속의 눈을 현실에서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차갑고 폭신한 눈을 두 손 가득 떠서 아이 손에 얹어주고 싶었다.
올 겨울 기다리던 눈은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엄마 마음 몰라주는 겨울이 야속하다.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영화 <룸>에는 작은 방 안에서 7년 동안 감금생활 중인 엄마 조이와 다섯 살 아들 잭이 나온다. 조이는 납치되어 감금생활을 한 지 2년 만에 아들 잭을 낳아 좁은 방에서 키운다. 잭의 세상은 램프 하나, 침대 하나, 세면대 하나가 있는 '룸'이 전부이다. 유일하게 세상을 볼 수 있는 통로는 TV이다. TV를 통해 본 세상이 신기한 잭에게 조이는 가상의 세상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잭이 다섯 살이 되는 날 조이는 아들을 위해 '룸'에서의 탈출을 결심한다.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해 진짜 세상을 마주한 잭이 하늘을 바라보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TV에서 봤던 가짜 세상의 그 하늘이 진짜가 된 순간이다.
영화처럼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엄마는 아이에게 세상의 온갖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바다를, 산을, 사람들을. 그 속에서 아이의 세상을 만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율이와 배를 탔다. 큰 페리호도 타고, 외할아버지의 작은 낚싯배도 탔다. 아직 어려서 그때의 기억이 남았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외할아버지와 화상통화를 하고선 율이가 말했다.
"할아버지 배 탔었지. 엄마랑 같이 탔지. 무서웠어."
작년 할아버지가 배를 태워준 걸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파도에 흔들리는 배가 무서웠다고 말했다. 처음 느껴본 바다의 결을 기억하고 있는 아이가 대견했다. 그래서 더욱 눈을 기다린다.
동화책 속 산타할아버지 마을에 소복이 쌓인 눈이 율이의 동네에도 왔으면 좋겠다. 따뜻한 동네에서는 너무나 큰 꿈이다. 올 겨울 가기 전 눈을 찾아 좀 더 윗동네로 떠나야 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