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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선곡 정원
세이수미의 음악이 갖는 힘 중에서 가사의 훌륭함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이수미는 분명 흔치 않은,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그들만의 가사와 서사를 쓴다.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최수미가 대부분의 작사를 맡고 있다고 한다.
세이수미가 노래하는 서사로 보통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은 그들의 대표곡인 'Old Town'이 그리는 '늙어가는 도시에 홀로 남은 자의 이야기'일 것이다. 부산이라는 밴드의 지역적 배경과 하필 또 서프록이라는, 그 배경과 꽤 어울리는 밴드의 지향은 듣는 이들의 머릿속에 'Old Town'의 서사가 더 확실히 각인되도록 했다. (더군다나 세이수미는 이 곡으로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락 노래 부분을 수상했다.)
하지만 세이수미가 그보다 더 많이, 꾸준히 노래해온 이야기는 이 이야기다. 내가 세이수미를 좋아하는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전체 플레이리스트 (유튜브)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a5UUKUtLAoc1vmNNNuB814cmYf2fIAv4
Say Sue Me / 1집 <We're Sobered Up> (2014)
I should go to bed early
to go to work tomorrow
And I drink a lot on weekends
to forget about work
I’m excited
Today is Saturday
And I’m satisfied that
I don’t need to go to work today
When I quit this job
I’ll never get a new job
Don’t say to me get a job
세이수미는 1집에 수록된 밴드명과 동명의 곡 'Say Sue Me'에서부터 지금 직장을 관두면 새로운 직장을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불안을 담은 후크를 수없이 반복한다. 세이수미는 이 곡을 두고 '노래 안에서 만큼은 계획도 없고, 대책도 없는 소리를 해대고 싶었다'고 말한다. (세이수미는 현재 멤버 모두가 전업 뮤지션이다!)
Long Night & Crying / 1집 <We're Sobered Up> (2014)
I know what a good thing is
But I don't have it
I don't have it inside
AlI I have is a long long night
I know what a good thing is
But I don't have it
I don't have it at all
All I can do is cry, cry, cry
My Problem / <Big Summer Night> (EP) (2015)
Saving money is my hobby
I don’t expect tomorrow will be different
Walking on a quite mountain
I imagine that at my work
The easiest thing is early to bed, early to rise
The easiest thing is early to bed, early to rise
I finish nothing, nothing happens all day again
Getting more sleep making more dreams
I finish nothing, nothing happens all day again
That’s my problem, That’s my problem
I’m just a dreamer and a realist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 속의 '나의 문제'. 강아지와 산을 산책하는 일 같은 것은 상상에만 있고, 돈을 모으는 게 취미이고 매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을 산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현실과 상상하고 꿈꾸기만 하는 이상 사이에 끼어 몽상가이자 현실주의자일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의 문제를 노래한다.
B Lover / 2집 <Where We Were Together> (2018)
You're right
I don't know what I wanna say
You're right
I don't know what I wanna hear
I'm just wandering in my room
You will not find me anymore
I'm sick of the way I feel woo-woo
I waste time looking for something new
Lying to myself "I did something good today"
I can't keep still, but I don't know what to do
I'm stuck in the way I think woo-woo
I waste time thinking of tomorrow
Lying to myself "I did something good today"
He don't like walking and he loves beer
불의의 사고로 쓰러져 현재 수년 동안 병원에서 꿈 속을 헤매고 있는 세이수미의 드러머 강세민을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한다. 화자가 '당신이 맞다'며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들은 걷는 것을 싫어하고 맥주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언젠가 화자에게 해줬던 말들일 것이다.
그래도 오늘 좋은 무언가는 하나 했다고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 'My Problem'에서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의 말처럼 그 이유는 나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어떤 꿈 / 2집 <Where We Were Together> (2018)
그 날 밤 꿈 속에서 난 많이 바빴어요
긴 잠을 자고 난 후에도 어제 오후 같은 피로에
잠들기 전 두근거린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내가 아닌 그곳으로 도망칠 수 있다면 좋아요
눈 뜨면 어디에도 없는 그런 곳이길
조금은 바래봐도 괜찮을까요 거기서 봐요
눈 뜨면 깨어나지 못할 그런 꿈 속이길
조금은 바래봐도 괜찮을까요 거기서 봐요
세이수미의 한국어 가사는 귀한 편이고, 나는 그 한국어 가사들을 좋아한다. 2집 작업에서의 목표 중 하나는 '한국어 가사를 늘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Old Town / 2집 <Where We Were Together> (2018)
Everyone left this old fucking town
Only I’m getting old with this town
I just wanna stay here
But I wanna leave here
All the friends I used to know left this town
Only I’m getting old with this town
I just wanna leave here
But I wanna stay here
I’m always late
Time chose that instead of me
How are you today
The street where we used to hang out is fine
How are you today
The beach where we used to hang out is fine
There’re just another stupid day
Being together was all that matter to me
There’re so many people like it used to be
But I feel nothing inside
Nothing inside
글의 서두에서 이 곡을 슬쩍 다른 카테고리로 밀어두긴 했지만, 사실 이 곡도 여기서 소개한 다른 곡들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한다. 화자는 'This fucking town'을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그곳에 남고 싶어하기도 한다. 남고 싶어서이든, 떠나지 못해서이든 화자는 그곳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말하는 곡은 많아도 대부분 그 거창한 이상의 대단함과 그에 못미치는 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노래한다. 일상에 대해 노래한다고 하면 보통 그 안락함과 소박함에 대해 노래하지, 현실과 일상의 '아무것도 없음'과 그 지긋지긋하고 비참한 것을 살아가는 나에 대해 이렇게 솔직한 노래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며 살아가는 감정이 그에 비해 그만큼의 서사는 갖지 못하는 것 같다.
한 락페에서 모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한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 하기엔 멋없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여기 서있는 자신도 지금 우리 공연을 보고 있는 여러분과 별 다를 것 없이 평일에는 사표를 품고 평범하게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라고.
어쩌면 대단한 락스타가 아닌, 한때 직장 생활과 병행하던 밴드여서 나올 수 있는 가사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세이수미는 정말 음악 잘하는 대단한 락스타지만.
p.s.
세이수미를 주제로 따로 집회 하나를 할 수 있을만큼 세이수미를 좋아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자'의 전주는 언제나 행복을 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