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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월 Apr 22. 2020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나쁜 교육>

그는 스페인을 이렇게 말한다.

며칠 전 우리 딸이 책을 한 권 사 왔다.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이란 일본 소설책이었다. 요즘 읽을 책도 없는데 잘됐다 싶었다. 무라타 사야카라는 작가 프로필을 보니 <편의점 인간>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다가와 문학상을 거머쥔 대단히 문제적 작가였었는데 나는 몰랐었다.  가끔 이럴 땐 나만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나 하는 지적 소외감이 든다.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의 주인공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물론 그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주인공 유카가 바라보는 여자 친구들 간의 권력관계, 뼈를 채운다는 의미(사춘기)의 성장통으로서 남학생 이부키와의 감정을 자세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의 중심에 서 있는 충격적인 성적 내용들은 일본 소설가들이 갖고 있는 특이한 문학적 상상력이라 신뢰하며 나는 단숨에 이 책을 읽었다. 읽고 나서 펑펑 울었다.




아마도 나는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나쁜 교육, 2004 >을 처음 보았던 그 시절에도 이렇게 울컥했던 것 같다. 첫째로는 주인공들에 대한 믿을 수 없는 동정심을 감정이입을 하며 눈물을 흘렸었고 두 번째는 너무 영화가 아닌, 사실적이나 그러나 너무나 영화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 통찰력에 감동한 것이리라.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인간들간의  권력에 대한.


<나쁜 교육>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1960년대 후반, 가톨릭이 운영하는 기숙 초등학교에서 노래를 잘하는 미소년 이냐시오 교장 신부에게 성적학대를  당한다.  이냐시오는 친구 엔리케를 퇴학시키겠다는 마놀로 교장 신부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신부의 추악한 행위를 받아들여야 했고, 그런 소년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이냐시오는 여장남자로 살아가며 심각한 마약중독자가 되었다.



나는 그 순간 신앙을 잃은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하느님과 지옥을 믿지 않으며  지옥을 믿지 않으니 공포가 없었다. 공포가 없으니 두렵지도 않았고 세상에 두렵지 않으니 뭐든지 할 수 있다.

 

이냐시오가 교장에게 성학대를 당하던 날의 감정을 이렇게 내레이션 한다. 


1980년, 마약중독자로서 돈이 궁해진 이냐시오는 초등학교에서의 성폭행 경험담을 담은 <방문객>이란 시나리오를 써서 마놀로 신부에게 협박을 한다. 그러나 이미 성직자에서 환속하여 멀쩡한 사업가로 변신한 마놀로는 돈이 궁색해진 이냐시오 떠나지 않고 오히려 이냐시오와 그 주변인들까지 이용한다.


 이 영화는 동성애(퀴어) 영화이다. 영화 속에 영화가 나오는 액자적 구성이라 이야기의 집중력을 갖고 보지 않으면  내용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사실 주인공이 이냐시오도 아니다. 그의 동생 후안이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이미 알모도바르가 만들었던 문제적 영화들인  <하이힐, 1991> <내 어머니의 모든 것, 1999> <그녀에게, 2002> 모두가 주인공의 내레이션과 복잡한 인물 구성, 빛나는 무대 쇼로 영화라는 종합적 장르를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주제가  동성애와 성범죄, 그리고 그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가감 없이 표현해 내다보니 정서적 차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다.

<콴도 콴도 콴도>를 부르는 이냐시오와 후안으로 분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나쁜 교육>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스페인의 정신적 이념인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권위가 여러 인간들의 욕망을 조율하는데 이미 실패했다고 보았다. 스페인에서 만연했던 종교적 위선과 추악한 지도자들이 벌이는 나쁜 교육들이 스페인 사람들을 어떻게 파멸시켜가는가를 보여주었다. 스페인은 통계적으로 국민의 94%가 가톨릭을 믿으며 여전히 왕이 존재하는 국가이다.


물론 현재의 스페인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 2004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다. 금박의 제단에 모셔진 성모 마리아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의 차지로 변했고 이제 스페인은 어느 나라보다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국가로 변했다. 그러나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스페인이란 나라가 가톨릭의 굴레 속에 얼마나 오랫동안,어떻게 살았었는지 잊지 말라고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나쁜 교육> 이후 가톨릭의 성범죄에 대한 영화는 종종 있어 왔지만 본격적인 고발은 미국 영화 <스포트라이트>였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차지하며 전 세계 울림을 주었던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보스턴 교구에서 몇십 년 동안 벌어졌던, 그러나 가톨릭 교구가 오랫동안  은폐해왔던 아동성폭력의 문제들이었다. 기자들은 이미 성인이 된 피해자들을 추적하며 그들이 일생동안 겪어야했던 고통과 죄책감 폭로했다.  

가장 최근에는 프랑스의 봉준호로 불리는 프랑소와 오종 감독이 <신의 은총으로> 발표하였다. 프랑스, 리옹에서 벌어졌던 아동 성폭력의 문제를 폭로하며 전 세계 가톨릭 성범죄에 대한 참회를 요구한 문제작이었다.

  2018년에 드디어 교황청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의혹으로 제기되었던 아동 성폭력의 문제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이런 사실을 교황청이 인정한 것도 처음이었다고 한다.



 


 나는 문제의 소설책 <적의를 가지고 애정을 하는 법>을 읽자마자 인터넷서점에서 총알배송으로 <편의점 인간>을 주문했다. 하루 만에 도착한 그 책을 펼치자 또다시 눈물이 났다. 이 책이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작가 사야카는 내 머릿속에 살았다. 이제 또 다른 책으로 그녀를 직접 만난다는 사실에 내가 감격했나 보다.


사야카는 나에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엄청나게 파도치던 사춘기 시절을 생각해내게 했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살아야만 했던 나의 어린 시절, 겉으로는 보통의 평범한 아이였지만 나는 늘 내가 가진 세계가 특별하다 믿고 그런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리들 사이에서 생각이 특이하다고 비난받는 백조로 살아왔다. 그게 사실이었든 아니었든 그 특별함의 경계에서 사야카는 40년 넘게  응어리진 나의 과거를  소설의 세계에서 완벽하게 읽게 해 줬다. 사람들은 부모이든, 친구사이나 연인관계에서도 누구나 힘의 권력의 욕망을 갖고 욕망을 쟁취하려 한다는 평범한 본성을 알려주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 욕망의 세계를 이해하며 내가 이런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무난히 이 사회에 순응하고 산 세월에 감사했다. 안도했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나쁜 교육은 받지 않은 듯싶다.


사람은 누구나 그 독특한 세계가 있다. 그 한 사람의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세계를 보는 것이고 그 세계 안에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마지막 장을 덮은 <편의점 인간>은 일본 최고의 문학상이 왜 주어졌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혹자는 이게 무슨 소설이냐고 하지만 이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대가  무라타 사야까의 언어 시대로 크로스 되는 느낌을 받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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