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에 있는 말만 안 들어도 성공
요즘 군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군인 부실 급식의 잇따른 폭로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그만큼 자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성장하고 있어 그런 것일 거다. 그러한 사회 흐름에 발맞춰, 군대 역시 장병들을 휴가 내보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난 저번 휴가 복귀 후 1달 반 만에 다시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신병일 땐 휴가가 군생활의 모든 것이었다. 업무가 힘들지언정 꼬박꼬박 나갔으면 좋겠다 생각했었고, 제약 많은 병사의 삶에 휴가마저 없다면 정말 끔찍하다고만 여겼었다. 그건, 아마도 그때까진 여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라도 더, 한 시간이라도 더 보고 싶었고, 외출과 면회가 안 되는 코로나 시국이 너무나도 미안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그런 휴가는 내 군생활을 가장 힘들게 한 장본인이다. 크루 근무자의 휴가 날짜는 변동이 너무 심해, 1주일 전까진 말하지 않는 것이 되려 나을 정도였다. 괜히 약속 잡아놨다가 약속을 모두 취소하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또한, 갑작스러운 훈련이나 또는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가 악화되면 열심히 짜 놨던 휴가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코로나 단계 향상이나, 훈련 때문에 휴가를 못 나간다는 소식에 언제나 내 가슴은 무너져 내리곤 했다. 내가 여자 친구를 못 본다는 것보다, 여자 친구가 날 보지 못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언제나 미안했고, 작아졌고, 위축됐다. 비보를 카톡이나 전화로 전하는 나의 심정은 학생 때 교무실 문을 쭈볏쭈볏 여는 초등학생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난, 차라리 오랫동안 휴가가 제한됐었던 시기가 나았다. 풀렸다, 막혔다, 나간다, 못 나간다 휙휙 바뀌는 상황보다는 차라리 못 나와도 모두가 납득할만한 상황 말이다. 단순히 군인들만 거리 두는 상황이 아닌 전국적으로 심각한 확산세에 지인과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운 시기 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만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는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군생활에 조금씩 적응해나갈 때쯤 여자 친구와는 헤어지고 말았다.
저번 휴가 당일까지도 사실 난 휴가가 그렇게 나에게 필요한가 의심했었다. 150일 만에 나가는 휴가였음에도 말이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날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은 무기력감과 허탈함이었는데, 그것들이 휴가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감정들은 아니라 판단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그 전날까지도 귀영 날과 격리 때 우울해질 자신을 걱정하며, 휴가 나갈 준비 했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사회와 군대는 공기마저 다르다고.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그날은 황사가 좀 심한 날이었는데, 내가 여태 맡았던 공기 중 가장 상쾌했었다. '중국엔 오직 달고나 공장들만 있는 건 아닌가.'는 장난 섞인 의심이 들 정도로 참 '달았던' 공기였다.
비록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런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흠뻑 머리가 젖을 때쯤 떠오른 생각은 실망이었다. 왜냐면 난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을 나의 장점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행복하고 홀가분해할 거면서 한 달 전부터 고뇌하고 걱정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스스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나의 행복추구권이 나로 인해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휴가 출영 30시간 전인 지금 역시 비슷한 배신감을 느꼈다. 워낙 금방 나가는 휴가이기도 하고, 딱히 만날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뭔가 소중하고 귀중한 휴가들을 흘려보낼 것만 같아 되려 짜증 났다. 이번 휴가도 왠지 첫 3일 동안 술만 주야장천 마시다가 남은 4일은 숙취에 절어 또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냥 휴가 아껴서, 일찍 전역해?'란 생각도 틈틈이 들었다. 근데 이게 웬걸, 오늘 새벽 근무까지만 하고 5월 21일에 나갈 생각 하니 지금 너무 신난 상태다. 아이고, 진우야. 이제는 네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 때가 되지 않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