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lf Dec 19. 2021

방을 가득 채우려면

병영문학상 응모작 2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빨래 더미로 향한다. 기존 춤 연습실이었던 생활관에서 난 늘 거울 위치가 불만이었다. 워낙 구석에 있던 탓에, 춤을 추며 자세를 확인할 수 없었고, 그 흠을 알아차릴 때면 열중한 것이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거울에 대한 갈증이 커질 때쯤 실내 공용 건조실이 눈에 띄었다. 순전히 연습실로 바라본 건조실은 적당히 미끄러운 욕실 타일과 조명, 그리고 7개의 벽면 거울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혹시’하는 마음이 들자마자 냉큼 연습해보았다. 결과는 대만족. 거울 사이를 들락거리며 춤추는 것은 기존 전신거울에서는 느끼지 못할 색다른 재미였다. 그날 이후 공용 건조실은 내 새 연습실이 되었다.

    연습이 끝나자 땀이 디지털 티에서 뚝뚝 떨어졌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샤워장에 가는 내 모습에 그만 헛웃음이 나왔다. 부대에서, 그것도 폭염 주의보가 발령된 이 날씨에 땀으로 목욕했다니. 나도 참, 어지간히 춤에 진심인가 보다. 

    열정에 관한 에피소드는 꽤 있었다. 초등학생 때 ‘셔플 댄스’를 추느라 고무 신발 3개를 구멍 낸 이야기, 고등학교 때 걸그룹 안무를 외워 반마다 순회공연 다닌 이야기 등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땀은 그때와 달랐다.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렇게 한 춤만을 파고든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셔플 댄스도 2년을 채 가지 못했다. 언제부터 땀에 절만큼 팝핑에 빠져버린 것일까. 시기를 딱 집어 말하진 못했으나 분명 ‘나의 춤’을 추기 시작한 시점 근방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한 추측 끝에는 스트릿 댄스를 선택하였기에 오늘까지 몰입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결론이 있었다. 만족감이 묘한 안도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미 동아리 연습 때부터 오늘 같은 날이 예견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동아리는 신입 부원만 매년 100여 명이 들어올 정도로 학교에서 손꼽히는 대형 동아리였다. 물론 선배들 역시 2년 차, 3년 차의 대학생부터 N년 차의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선배들이 체계적 시스템 아래 열과 성을 다해 우리를 가르쳐주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주 활동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춤을 만들러 온 그들은 중간에 짬이 나거나, 딱히 가르칠 필요가 없는 날에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마저 개인 연습에 몰두했아ᅠ갓다. 덕분에 거울은 늘 다양한 장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화합의 구경거리였다.

    연습이 끝날 무렵 선배들은 ‘잼(jam)’을 하자며 사람을 모았다. 잼이란 랜덤한 음악에 맞춰 40초 내지는 1분씩 돌아가며 춤을 추는 것을 말한다. 보통은 원형의 모양으로 빙 둘러선 후, 자신의 순서가 되면 가운데로 나오는 방식이었다. 선배들의 잼은 늘 소통의 장이었다. 음악이 주제였고 춤은 답변이었다. 같은 음악에도 다양한 춤 양상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누구는 담담했고, 누구는 뽐냈으며, 누구는 노련했다. 개인마다 실력의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가 대화를 즐길 줄 안다는 점은 똑같았다.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좋아하는 그들은 음악이 끝나면 무언의 눈빛으로 ‘한 곡 더?’를 외치는, 그런 열정적인 수다쟁이들이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내 첫 잼이 그랬다. 선배들의 유쾌한 에너지에 깜빡 속아, 얼떨결에 원의 중심으로 나왔을 땐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뒤통수를 누르는 듯했다. 고개를 들려고 해도, 시선은 바닥에서 당최 벗어나질 못했다. 당장 어떤 동작을 해야 할지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고, 안 그래도 소심한 동작들이 더욱 작아졌다. 그날의 난 끊임없이 변주되는 주제 속에서 “안녕하세요.”만을 중얼거리다 30초도 안 되어 발언권을 내려놓은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대화랑은 확연히 달랐다. 춤은 문장이나 단어를 익히는 데 훨씬 오래 걸렸다. 주제인 음악 또한 연거푸 변화하는 까닭에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느꼈다 한들 내 식대로 표현하는 것은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었다. 더군다나, 평균 0.6초마다 들어오는 드럼 비트는 어서 말하라 재촉하며 망설이는 나의 등을 떠밀었다. 실상은 누구도 기다리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지만 말이다. 혼란에도 춤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은 날 매번 가던 ‘길’로 밀어 넣어 버렸다.     




    길은 밟기 쉬운 땅이다. 인도는 사람이 밟기 쉬운 땅이고, 차도는 차가 밟기 쉬운 땅이다. 사전이 길을 “사람, 짐승, 배, 차, 비행기 따위가 오가는 공간”으로 정의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로를 무시한 채 풀밭으로 뛰어간 사람을 보며 그가 초록 길로 걸어갔다 평하지 않으니 말이다.

    길은 반복의 조건을 달성한 것들이다. 선택받지 못한 길 위로는 곧 잡초가 자라기 시작한다. 마땅히 채택의 기준은 ‘최적’이다. 결정에 앞서 육하원칙이 관여한다. 더 나은 길을 위해 사용자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를 모두 자신의 입맛대로 설정한다. 이때, 주관은 두 항목, ‘어떻게’와 ‘왜’를 통해 선택에 개입한다. 이는 길의 전제부터 깜냥이나 선호와 같은 개인적인 이유가 놓여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길은 비단 물리 세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의 행동에도 길이 존재한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반복된 상황이 길을 들인다. 체득된 길은 비슷한 경우가 닥치면 매뉴얼이 되어준다. 예를 들어, 퇴근 후 집에서 편히 쉬는 모습을 상상하자면 우리는 무엇이 휴식을 주는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 켜기’라는 길을 따라가며 별 고민 없이 행동한다. 정신적 피로를 덜어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일에 집중하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길은 현실과 닮아있다.     


    춤과 길은 태생부터가 대립적인 개념이다. 예술은 굳이 도로를 넘어 꽃을 보는 행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연습하다 보면 춤에도 길이 생긴다. 전제가 말해주듯 길의 형태는 개인마다 다르다. 누구는 길이 댄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도 한다. 길은 분명 양날의 검이다. 길이 없다면 자유로이 돌아다니려 해도 미처 음악의 타이머를 넘지 못할 것이다. 반면, 심취한 나머지 길에 묶여버린다면 춤은 어느새 단조롭고, 지루한 일이 되어 다가올 것이다. 자기 생각을 춤에 담기 위해 댄서는 길을 걷되 묶여있지 않아야 한다. 어쩌면 프로 댄서와 아마추어 댄서를 나누는 가장 큰 차이다.

    댄서들은 독특한 연습법을 도입함으로써 이러한 매듭에서 자유로워지려 한다. 내가 실제로 그들에게 직접 배운 연습법은 심히 황당한 것들이었다. 첫 번째는 바닥에 4개의 정사각형 점을 찍은 후, 그 점만을 밟으며 춤추는 것이었다. 듣자마자 부족한 경우의 수가 먼저 떠올랐고 기껏 춰 봐야 20초가 한계라 속단했었다. 그런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연을 해줬던 댄서는 스텝은 물론, 점프까지 활용하며 4개의 점만을 밟았다. 보는 내내 ‘아, 저렇게도 밟을 수 있네.’란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의심을 몸소 깨트리며 속박 없는 아마추어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였다. 두 번째는 속칭 ‘움직이지 마’ 연습법이다. 두 명이 짝을 이루는 연습법으로 매우 간단하다. 한 명이 손가락으로 추는 이의 신체를 누르면, 해당 부위를 움직이지 않고 춤을 추기만 하면 된다. 변형으로는 손가락의 개수를 늘린다거나, 노래 중간마다 손가락 위치를 바꾼다거나 할 수 있다. 하기 전까지는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어깨 하나 정도는 안 써도 괜찮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연습에 들어가면 상황은 급변한다. 팔꿈치만 눌려도 온 신경이 팔려 춤이 말리기 일쑤다. 도대체 암 웨이브(arm wave)를 배우기 전까지는 어떻게 춤을 췄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 말고도 댄서들은 ‘미역처럼 움직이기’ 같이 이미지 조건을 걸기도 하고, ‘4박 중 세 번째 박에는 스탑하기’와 같이 박자 해석의 조건을 걸기도 한다. 모든 연습법의 공통점은 강한 조건을 부여하는 것이다. 경험하지 못한 제약에 처음에는 대부분이 버벅댄다. 당연하다. 갑자기 돌덩이가 길을 막아선 격이기 때문이다. 길은 없는데 음악이 뒤에서 쫓아오니 ‘경로 탐색’이 새로, 또 급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때가 바로 내 춤을 다채롭게 만들어줄, 미흡하고 참신한 무브를 몸에 쌓을 기회다. 돌덩이를 놓으면 놓을수록 길의 개수는 늘어난다. 늘어난 길들이 서로 얽혀 평지를 이룰 때 비로소 춤 위에 내 감정을 얹을 수 있게 된다.     

  



    길도, 평지도 무수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삶의 가능성을 논하기엔 선, 그리고 면의 자유도로는 역부족이다. 못해도 입체가 필요하다. 그 말인즉슨,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택지를 모아놓는다면 방 정도 된다는 것이다.

    합법적으로 술을 먹을 수 있을 때쯤 사람들은 자신의 방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여긴다. 신체의 성장도 끝났겠다, 20년 정도 봐왔겠다, 방이 너무 뻔하다 느끼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그들은 지루함을 방의 한계와 결부시킨다. 방이 너무 작아서, 방이 너무 익숙해서 더는 즐길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 방이 댄서의 방에 비해 모자라서, 그니깐 아직 근력이 부족하고 가동범위가 작아서 그들처럼 추지 못한다 생각했었다.

    시시함을 벗어나고자 사람들은 남은 제한 마저 무너트리려 노력한다. 방을 키워 변화를 만들겠다는 심상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현대 방의 크기는 과거와 비교할 바 없이 자라났다. 시공간의 경계가 옅어지는 것은 물론이며 여러 업무가 자동화되었다. 하지만 그런 기술의 발전에도 인간의 삶은 더욱 뻔해졌다. 커진 방을 감당하기 위해 길에 더 귀속되는 모순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막상 춤을 춰보니 방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은, 영역의 차이였다. 스트레칭이나 운동으로 방을 키워도 춤에는 괄목할만할 발전이 없었다. 그들과 같은 연습실에서 연습하며 난 내 문제점을 깨달았다. 내가 내 방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자신만만했던 내가 3차원의 방 속에서 알고 있는 것은 딱 평소에 오가는 1차원의 길만큼이었다. 그 외의 부분은 앎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었다. 반면 댄서들은 나 있는 길을 굳이 부정하고 힘들게 돌아감으로써 방을 온전히 탐방했다. 길을 걷는 사람과 방을 돌아다니는 사람. 자유의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심심함이 몰려올 때면 난 핸드폰으로 댄서들의 영상을 찾아본다. 현란한 춤사위에 감탄도 하지만 부럽기도 하다. 그럴 때 다시 한번 고민하는 것이다. 지금 내 방 어디가 비어 있는 걸까. 또, 어떤 제약이 그곳에 날 도착하게 해줄까.

작가의 이전글 노을 진 솔잎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