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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l 07. 2024

짜장면과 얽힌 어떤 하루

어린 시절 이해되지 않은 어떤 하루





유퀴즈에 출연한 유해진 씨의 이야기다.

어릴 때를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은 하루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오셨다.

어머니가 "오늘 바쁜데 뭐 좀 드셨어요?" 물으니

"어우씨 겨우 겨우 짜장면 하나 먹었어"라고 대답하셨단다.

어린 유해진 씨 입장에서는 짜장면을 먹었는데  화를 내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

아버지의 그 말은 하도 바빠서 맛있는 거 하나 먹었어라고 들렸기 때문이다.

철딱서니 없던 시절의 이야기. 

나에게도 매일 짜장면 한 그릇으로 점심으로 때우는 아버지가 부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유치원 시절, 나의 이야기이다. 그 당시 짜장면은 나에게도 욕망의 음식이었다. 언제 처음으로 그 맛을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맛을 본 뒤로 나의 혀는 늘 짜장면을 갈망했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아빠는 1.5톤 트럭을 운전하셨는데 차고지 사무실 바로 옆에 중국집 하나가 있었다. 아빠의 단골 식당. 그리고 단골 메뉴는 늘 짜장면이었다. 나는  짜장면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는 아빠가 부러웠었다.  


언젠가 아빠에게 찾아가, 짜장면 한 그릇 사달라고 해야지. 그 당시, 내가 품었던 원대한 꿈이었다. 온순함 98%, 발칙함 2%를 가진 나였다. 엄마 말을 중국집 메뉴판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던 아이.  유치원이 끝나면  거리를 기웃대지 않고 곧장 집으로 오던 아이였다


그날은 발칙함 2%가 온순함 98%을 집어삼키던 날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던 하루였다. 아빠를 찾아가야겠어. 짜장면을 사달라고 해야겠어.

나의 단짝 윤경이를 꼬셔서 짜장면 모험을 함께 떠나기로 했다. 유치원에서 아빠가 근무하는 곳까지 가려면 큰 신작로를 두 개나 건너가야 했다.  하나는 신호등 있고 하나는 없었다. 신작로의 폭이 얼마나 넓은 지 회색 빛 태평양 같았다.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차들이 파도처럼 출렁대는 망망대해 신작로를 건너갔다.


사실, 아빠가 계신 곳을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디쯤, 사거리 은행의 오른쪽 어디쯤이었다. 그날 친구와 나는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트럭이 몇 대 서 있던 사무실도 쉽게 찾았고, 일거리를 기다리던 아빠도 만날 수 있었다.


"아빠"


아빠는 친구와 함께 느닷없이 나타난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나는 짜장면이 먹고 싶어 저 신작로 두 개를 건너 여기까지 왔노라고 이야기했다. 아주아주 자랑스럽게. 그런 내가 아빠도 자랑스러웠을까? 아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 친구와 나를 데리고 짜장면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런데 기대와 다르게 아빠는 한 그릇만 주문하셨다. 그때 아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셨는지, 7살 여자 아이들에게 한 그릇은 너무 많다고 생각하신 건지 아빠의 속마음은 알 수 없었다. 2%의 발칙함이 에너지를 다하고 98%의 온순함만 남았던 나는 한 그릇씩 시켜달라는 말을 못 하고, 반반씩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그릇이 반질반질하도록 먹었다.


짜장면 모험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를 기다린 건, 매운 양파 같았던 엄마의 잔소리였다. 춘장 같았던 깜깜한 밤, 나는 노란 단무지처럼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그래도 짜장면은 참 맛있었다. 45년이 지난 지금도, 지금까지 가장 맛있게 먹은 짜장면이 언제였냐고 물으면 그때라고 말할 것이다.이젠 지도에도 찾을 수 없는 신작로 사거리 어디쯤, 무슨 반점이었는지 무슨 각이었는지 기억도 없다.  무언가 내가 뜨겁게 열망하던 그것을 내 힘으로 쟁취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때 내가 건넜던 신작로는  천호역 사거리 천호대로다.  라디오 교통방송에 빠지지 않는 그곳. 가끔 친정집을 다녀올 때면 생각한다. 얼마나 짜장면이 먹고 싶었으면 저기를 건너갔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그때의 나를 칭찬한다.


짜장 비게기름이  윤슬처럼 빛났다. 그때 나는,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던 겨우 7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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