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가을 똥 냄새가 나는 거 같지 않아?”
“흠, 난 잘 모르겠는데… 가을 똥 냄새는 무슨 냄새야?”
지난 9월 중순, 처음으로 춘천시립도서관에 찾았다. 도서관 산책자로 조용하고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항할 때였다. 출입문을 나서는데 두 중년 여인의 대화가 바람처럼 내게로 실려 왔다. ‘똥’이라는 단어에 한번 솔깃하고, ‘가을’이라는 말에 두 번 솔깃했다.
‘가을 똥 냄새라니…’ 나는 들키지 않으려 살짝 고개를 돌리며 공기를 들이마셨다. 얕게 한 번, 깊게 또 한 번. 아무리 숨을 쉬어도 가을 똥 냄새는 나지 않았다. 내 코끝엔 여전히 늦여름의 푸른 냄새만 남아 있었다.
그 냄새가 궁금했다. 혹시 앞서가던 누군가가 방귀를 뀌고 달아난 건 아닐까. 온갖 상상이 발동하던 순간 가을 똥 냄새를 맡았다는 여인이 말을 이었다.
“왜, 가을에만 나는 냄새 있잖아. 시골에서 나는 냄새… 이맘때만 나는 냄새… 정말 몰라?”
‘몰라. 진짜 몰라.’ 하마터면 내가 대답할 뻔했다. 이성이 간신히 주책을 말렸다. 그때 알았다. 가을은 눈으로만 느끼는 계절이 아니라, 코로도 느끼는 계절이라는 걸. 가을을 즐기는 새로운 감각이 그날 처음 피어났다. 나도 이번 가을엔 ‘후각으로 가을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11월 초, 다시 춘천시립도서관을 찾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보이는 산의 빛깔은 한층 짙어졌다. 춘천에도 도서관이 여럿 있겠지만,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 중 하나는 넓은 주차장 때문이다. 도서관을 다니다 보면 늘 아쉬운 게 주차 문제다. 문화행사라도 열리는 날이면 주차장은 금세 만원이다. 그런 점에서 춘천시립도서관은 여유롭다. 넓고, 게다가 무료다. 덕분에 도서관 산책자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춘천시립도서관은 ‘장난감 도서관’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가보니 키즈카페를 방불케 하는 대형 놀이공간이 있었다. 내가 방문한 날은 평일이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진 못했지만, 주말이면 많은 가족들이 찾는다고 했다.
자료실 문을 열었다. 나는 도서관이 직장인 사람이다. 다른 지역의 도서관을 방문하면 본능적으로 도서의 정렬 상태부터 보게 된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쓰러진 책을 세우고, 잘못 꽂힌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출간된 소설이 일반 서가에 잘못 꽂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책을 집어 들고, 신간 서가로 갔다.
도서의 정렬을 보는 마음은 언제나 복잡하다. 너무 반듯하면 한 권쯤은 일부러 비스듬히 눕혀두고 싶고, 너무 들쑥날쑥하면 손바닥으로 다독이며 줄을 세워주고 싶다. 하지만 중요한 건 책의 정렬이 아니라, 그 책을 고르는 사람의 마음이다. 수천, 수만 권의 장서 속에서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춘천시립도서관을 찾을 때 너무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호반의 도시’라는 이름처럼 윤슬이 반짝이는 강변 뷰를 기대하면 안 된다. 이 도서관은 강가가 아닌 숲 속에 있다. 그렇다고 울창한 숲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대신, 그보다 다정한 비밀 공간이 있다. 바로 도서관 옆 ‘무장애 도시 숲’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긴 데크로 잇는 길. 교통약자를 배려한 도시 설계다. 나는 ‘무장애’라는 단어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멈췄다. 어떤 장애물도 없이,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시의 품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층 자료실에는 춘천을 배경으로 한 작가들의 전시물이 있었다. 작가를 향한 예우 같았지만, 동시에 도시의 자부심이었다. 윤대녕, 전상국, 이외수, 안정효… 문학청년 시절 나를 흔들던 이름들이 보였다. 그러나 이 수많은 작가 중에 춘천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는 단연 ‘김유정’이었다.
중학생 때였을까. 처음으로 춘천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 때문이었는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내게 남은 한 문장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이성의 존재가 TV 속 연예인이 전부였던 시절, 쾌쾌한 만원 버스 안에서 알싸한 향기가 나는 이성을 찾기란 어려웠다. 한없이 되바라진「동백꽃」속 점순이의 용기를 부러웠다.
드디어 3층 지역작가 서가에서 오래전에 발행된 김유정의 책을 찾았다.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오래된 일기장을 펼친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밀봉된 꿈 하나가 조심스레 해제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표지를 넘기자마자 추억의 엄숙함은 깨졌다. 목차부터 낙서가 보였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엔 주황색 사인펜 밑줄이, 어떤 작품엔 연필로 체크 표시가 있었다. 낙서가 있음에도 희귀본이라 비치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손때까지 함께 전시하려는 의도였을까. 오래된 종이의 결만큼이나 이 책을 선택한 사서의 고민이 깊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몇 장을 더 넘기자 머리카락 한 올이 책갈피처럼 끼어 있었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받다 보면 머리카락은 흔한 발견이다. 마트 영수증, 신용카드, 생일 엽서, 심지어 재산세 고지서까지 책과 함께 반납된다. 머리카락의 얇은 굵기로 보아 중년의 것이 분명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까, 「동백꽃」을 읽던 시절의 그리움이었을까. 코끝까지 올라오는 뭉클함을 간신히 눌렀다.
김유정을 품은 도시답게 춘천에는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도서관 산책을 마친 뒤에는 이곳을 함께 들러보길 권한다. 물론, 그사이 식사 시간이 존재한다면 닭갈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닭갈비의 고장답게, 맛없는 집을 찾기란 오히려 어렵다.
김유정 문학촌에는 청년 작가의 짧지만 뜨거운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유정은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자신의 고향을 이렇게 썼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들어 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고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실레 마을. 토속적이면서도 어딘가 이국적인 이름이라 생각했다. 문학촌 곳곳에는 작품 속 장면들이 조각되어 있었고, 전시관 내부에는 젊은 작가의 열정과 가난, 병마와 싸운 고독이 남아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김유정이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였다. 병이 깊어지고 있었다. 번역거리를 보내주면 그 돈으로 “닭 30마리, 살모사, 구렁이 100마리”를 먹고 다시 살아나겠다고 했다. 삶과 죽음, 문학에 대한 결연한 의지 앞에서 숙연해졌다. 그렇게 그는 스물아홉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나 역시 춘천에서의 하루를 마감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차에 타기 전, 전시관 옆 화장실에 들렀다. 그때였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덜 마른 나뭇잎 향기 같기도 하고, 화장실 특유의 냄새 같기도 했다. 혹시 이것이 가을 똥 냄새였을까. 잠들어 있던 후각을 톡 하고 깨우는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오래오래 맡고 싶었지만, 손을 씻고 나오자, 그 냄새도 사라졌다. 아쉬웠다.
가을이라고 해서 도서관 이용자가 늘어났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아름다운 계절의 유혹을 물리치고 도서관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을에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을 진짜 ‘도서관 덕후’라 부르고 싶다. 그들은 아마도 이 계절의 단풍이 책 속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내면의 단풍을 더 아름답게 물들이고 싶다면, 아름다운 계절에 도서관 산책자가 되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도서관 문을 나설 땐, 바람에 실려 온 가을 똥 냄새를 맡는 행운도 누리시기를.
앗 그런데, 지금은 벌써 겨울이니... 겨울 똥 냄새가 나려나?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진즉 써 놓고도 발행이 늦었던 이유는
'삶은 도서관' 관련 홍보글을 먼저 쓰느냐고 였습니다.
출간 이후, 울렁거리는 마음을 쉬는 날 마다, 캐리어 끌고 도서관을 위한 도서관 여행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끔 책 홍보를 하다보면, 도대체 언제까지 삶은 도서관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지점이 있어요.
아직, 한 달이니, 이해해주시기기를요^^
당분간, 도서관을 계속 삶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