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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l 16. 2024

시어머니에게 돈자랑을 했다.

일단, 제목부터 세게 써봤다. '시어머니에게 돈자랑'이라니...  제목을 본  반응은 두 가지가 않을까 싶다. 

첫 번째는 돈 많은 시어머니의 유세에 눌린 며느리의 돈 자랑 복수극. 

두 번째는 진짜 돈이 많은 가수 장윤정씨급의 며느리가 들려주는 돈자랑 이야기.


사실 둘 다 아니다. 드라마로 치면 휴먼 다큐에 가까운 이야기, 

제사상에 올린 흰밥처럼 꾹꾹 눌러 담아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모셔놓은 이야기이다.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10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셨다. 치매 진단을 받으신 건,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였다. 다행히도 시어머니는 착한 치매였다. 치매약을 드시면서 예전보다 더 웃음도 많아지고 너그러워졌다. 오히려 치매 걸린 시어머니와 사는 게 호랑이 시어머니와 사는 것보다 평안했다.


그럭저럭 5년이 지났다. 주말 오후, 나는 방에서, 시어머니는 거실에서 낮잠을 잤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는데, 시어머니의 혼잣말에 욕이 섞여있었다.  '배라먹을 년 , 육시럴 년'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각양각색의 욕들이 튀어나왔다. 누군지 몰라도 욕 듣는 대상은 귀 좀 시끄럽겠다 싶었다. 며칠 후에도 똑같은 욕이 방언처럼 터지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이었다. '나쁜 년,  호랑이가 물어갈 년, 며늘 년이 시어머니 돈을 훔쳐가기나 하고'... 어쩌고, 저꺼...고...#$%@ 사실 뒷 말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며느리라면? 혹시 나?

그 대상자가 나임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방문을 박차고 나가, 누가 어머님 돈을 훔쳤냐고 외치고 싶었으나,  일단 나는 참기로 했다. 심장이 덜덜덜 떨렸다. 퇴근한 남편에게만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생생한 라이브로 들었던 내 마음을 위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이 보름, 아니 한 달쯤 지속되었다.  


어느 날 어머님이 동네 재섭 아주머니와 사슴피를 파는 사슴농장에 가신다고 하셨다. 나는 봉투에 20만 원을 준비해서 어머님께  용돈을 드렸다. 1시간쯤 뒤였을까? 사슴농장을 가야 할 시간인데, 어머님은 거실에 드러눕더니 다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내가 또 돈을 훔쳐가서 사슴농장에 못 간다는 것이다. 마침 그날은 남편도 함께 있었다. 남편은 지수엄마가 왜 엄마돈을 훔치냐고 내 편에 섰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먹히지 않았다.


나 역시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방으로 뛰쳐 들어가 장롱에 묵은지처럼 푹푹 묻어놓은 통장들을 꺼냈다. 버리지 못하는 습관 덕에, 이미 만기 된 통장까지 무려 20개 정도의 통장이 나왔다. 죄다 깡통통장. 나는 그 통장들을 가지고 나와 시어머니께 당당히 내밀었다.


"어머니, 이 통장들 좀 보세요.  제가 돈이 이렇게 많은데 어머님 돈을 왜 훔쳐요"


나는 통장 하나하나를 바닥에 펴 보이며,

'천만 원' '이천만 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시어머님께 실컷 돈자랑, 통장자랑을  했다.

물론 시어머니는 눈길 한번 주지 않으셨다. '저 년이 미쳤나' 딱 표정이었다.


간신히 남편이 봉투 하나를 더 준비해 드리자,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사슴농장에 가셨다. 사슴피를 드시고 기분이 좋아지신 덕인지  아침에 그렇게 욕을 하던 며느리에게 이게 여자들한테 그렇게 좋다며 사슴피 한 사발을 내미셨다


피 한 사발로 욕사발을 들이 킨 한이 풀릴 리 없다. 

게다가 사슴피라니, 내가 구미호도 아니고 피를 어찌 마시며,

이 시추에이션은 병 주고 피 주고란 말인가?


남편이 중간에서 애를 쓴 덕에 피 한 사발 대신 막걸리 한 사발로 분위기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다만 시어머니의 치매가 더 이상 착한 치매 단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만기 전에 해지해야 하는 적금통장처럼 무거웠다.


왜 하필, 시어머니에게 돈에 집착하는 치매가 오게 된 걸까? 시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돈을 한번 움켜쥐면 절대 놓지 않으셨던 분이라고 했다. 학교 육성회비도 깎아보자 하셨단다. 반면 시어머니는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자식들 손에 쥐어주고 싶어 안달이 나셨던 분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런 인색한 남편 옆에서 평생 살다 보니 돈에 맺힌 한이 오죽 컸으랴 싶었다.


어쨌거나, 그날 나의 돈자랑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돈도둑은 언제나 며느리인 나였다. 병이니 어쩌랴, 랩이다 생각하고 들으니, 아주 찰진 것이 라임을 타는 것도 같았다. 게다가 아주 더 중증으로 진행되고 나서는 그마저도 듣기 힘들었으니, 그래도 욕을 하던 순간은 그나마 시어머니의 기력이 있을 때였다. 


돌아가신 후 찍어본 시어머니의 통장 잔고에는 300만 원 밖에 있지 않았다. 그 앞에서 돈자랑 하던 며느리가 얄미웠을까? 아니면 기특했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또 가끔은 욕 듣고 산 며느리치고는 입이 맑은 착한 중년으로 자란 거 같아 대견하다. 혹시나 시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요 한 말씀은 꼭 듣고 싶다. 아니 들어야겠다.


"욕봤다. 우리 며느리"




시어머니에게 한 돈자랑스토리는 사실 한 번으로 끝날 이야기는 아니다. 다음에는 시어머니의 돈다발 플렉스를 써볼까 한다. 많이 부러울 실 이야기니,  배아픔 주의. 굳이 드라마 장르로 치면 이번에는 시트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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