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未婚)이 아니라 비혼(非婚)입니다.
요즘 언론 매체를 통해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비혼 라이프를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도 인기다. 결혼을 굳이 하지 않아도 혼자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삶의 방식을 소개하고 있는데 보다가 혼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미혼이라는 말 대신 비혼이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미혼이라는 말이 ‘원래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이지만 아직 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것이라면 비혼은 ‘혼인 상태가 아니다’라는 보다 주체적인 의미로 여성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휘다.
물론 미혼이라는 말이 여성에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미혼여성, 미혼남성 등으로 쓰인다. 미혼이라는 어휘는 결혼하지 않은 그들이 꼭 결혼을 해야만 하며 미혼상태가 뭔가 아직 이루지 못한 미완성의 단계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혼기가 지난 미혼자녀가 있는 경우에 어서 결혼하라며 자식들을 들볶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혼이라는 단어는 ‘결혼은 선택이다.’라는 요즘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결혼은 선택이라는 그들의 이야기에 동의하면서 진즉에 알았더라면 나도 결혼하지 말걸 그랬다는 엷은 후회가 스쳐지나간다. 그 당시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가치관의 틀에 갇혀서 부모는 결혼을 하라고 등을 떠밀고 나는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냉큼 결혼해버린 것이다. 물론 결혼을 함으로써 얻은 것도 많고 누린 행복도 크다. 반면에 결혼과 더불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커져만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처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단순한 아쉬움과는 다른 것이다. 박완서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게 느껴져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 것은 결혼 그 자체에 대한 후회라기보다는 ‘결혼’과 ‘비혼’ 사이에서 좀 더 치열하게, 좀 더 주체적으로 고민해보지 못하고 덜컥 결혼을 결정해버린데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그 당시 통용되던 가치관에 순응하고 어쩌면 굴복해버린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요 분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시대든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이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가치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주체적인 ‘비혼’이라는 말이 젊은 여성 또는 남성을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하나의 고정된 가치관에서 비껴서있게 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아무리 좋은 제도나 가치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한 개인의 삶을 속박하려고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비혼 라이프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다가 살면서 생각이 바뀌면 아름답게 결혼할 수도 있다. 제발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더 이상 들볶거나 뭔가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바라보지 말자.
결혼을 하는 사람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의 젊은이들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또 재혼을 하는 사람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재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사회가 좋지 않은가.
다양한 삶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진정 자유로운 사회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