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부터 김 씨 네 가족 되는데 삼십년이 걸렸다

by 은해


‘불이야!’

나 혼자 대문 밖으로 도망 나와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고 집안을 들여다보니 시어머니와 육촌 동서가 불을 끈다고 난리 법석이었다. 어떤 이는 이불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 어떤 이는 양동이에 물을 떠다 부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마루 건너 작은 방에서 불이 났다. 오래된 콘센트에 너무 여러 가지 전기 제품을 꽂았는지 불꽃이 튀며 불이 번지고 있던 것을 누군가가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불이야’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대문 밖으로 달아났다. 왜? 우리 집이 아니었으니까. 얼른 다시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순간 다시 생각해보니 거기는 우리 집이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시집이다. 눈치를 보니 다행히 내가 대문 밖까지 도망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것을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다. 휴우, 누가 보았으면 어쩔 뻔했나. 결혼하고 두 달 만에 있었던 시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시댁에 갔다가 일어난 일이다. 마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었고 바로 진화에 들어가서 불은 크게 번지지 않고 정리가 되었다.

맞선을 보고 결혼까지는 두 달 보름이 걸렸다.

설이며 추석 때가 되면 버스를 타고 시댁으로 간다. 시댁으로 가는 그 버스 안에서의 심경은 아주 복잡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지? 명절인데 우리 집으로 가야지 왜 남의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내 부모 형제들이 그립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버스를 갈아타고 우리 집으로 가버릴까도 생각했다. 옆 자리에 앉아 있는 남편을 한 번 쳐다본다. 답답하고 속상한 내 심정은 짐작도 못한 체 짐짓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이제 다 와 간다고. 시댁에 다 와 갈수록 내 마음은 더 달아나고 싶었다. 우리 집으로.

이제 시집왔으니 한 가족이란다.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시 월드에 가보면 남편 빼고는 다 남들 뿐이다. 몇몇 어른들은 예뻐해 주기도 했지만 어떤 이는 날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이럴 수가. 우리 집에서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다 나를 좋아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가족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가족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주기를 은근히 요구해온다. 속으로 외쳤다. 그네들은 나를 진정한 가족으로 대해주지 않으면서 나더러 가족의 도리를 다하도록 바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고.


‘ 출가외인(出嫁外人) ’

어느 날 언쟁 중에 남편이 내뱉은 말이다. 언제나 친정 식구들에게만 애절하고 시댁 식구들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는 나를 향해 그가 던진 말이다. 그 날부터 머리에 띠만 두르지 않았지 나는 투사가 되어 출가외인이라는 말의 부당함을 그에게 주장했다. 출가외인이란 시집간 딸은 남이나 다름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출가가 집을 떠나온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남자의 경우나 여자의 경우나 마찬가지이다. 또 물리적으로 집을 떠나오기는 했지만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와 형제를 멀리 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소리를 높였다. 나의 격한 반응에 그는 다시는 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말에 대한 유감을 두고두고 간직하고 있었다.


색동 돌복을 의젓하게 차려입은 아들이 돌상을 받는다.

그런 아들을 안고 그와 내가 나란히 앉아있다. 돌잡이를 하고 친척들이 선물을 건네는 순서가 있었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손들이 아이 앞으로 내밀어지자 아이가 놀라서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의 돌이라고 알렸더니 많은 시댁 손님들이 축하해 주러 왔다. 서울, 대전, 안동, 대구에서 많게는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달려와 준 것이다. 시어머니, 시 숙모님들. 시아주버니들, 시동생들, 동서들, 시누이, 사촌에 육촌들까지. 나는 처음으로 그들이 내 가족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나의 가족이었다.

돌잔치를 하던 그 아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이제는 며느리의 입장이 아니라 미래에 시어머니가 되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자리로 옮겨 앉았다.

마음으로부터 김 씨 네 가족이 되는데 삼십 년이 걸렸다.

너무 오래 걸린 것일까. 이십 대에 결혼해서 삼십 년이 넘게 흘렀으니 친정에서 자라온 시간보다 결혼 후에 더 많은 세월을 살아온 셈이다. 이제 청년이 된 내 아들이 김 씨 성을 달고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고 나도 자연스럽게 김 씨 네 가족이 되었다.


사실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느 날부터 친정에 가보니 더 이상 내 자리가 없었다. 언제나 우리 집이라고 믿고 있었던 그곳이다. 결혼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내 집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 엄마네 집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는 이십칠 년 전 그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왔던 올케가 새로운 주인이 되어 안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이제 김 씨 네 가족이 되어 버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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