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知友)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한 벗

by 은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가 있을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늘 나를 바라봐주는 친구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도 있음이다.

살다 보면

어느 날은 특별한 까닭도 없이 울적한 날이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편한 사람하고 술 한 잔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어느 순간에는 마음속 응어리들이 꿈틀거려서 실컷 울고 싶은 날도 있다.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화가 치미는 날도 있다.

웬일인지 기분이 들떠서 호들갑을 떨고 싶을 때도 있다.

문득 외로워져서 바다가 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전화하면 그저 이유도 묻지 않고 ‘그래?’ ‘알았어.’라고 하며 같이 있어 주는 사람.

그 사람은 나의 지우(知友)다.


맞선 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그야말로 블라인드 데이트(Blind Date)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남자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수없이 많은 밥을 함께 먹었고 차를 함께 마셨다. 가끔은 함께 술을 마셨고 여행을 같이 가기도 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기뻐했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같이 울어주었다.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나쁜 놈’이라며 같이 화를 내주고 심지어는 대신 싸워주기도 했다.

쉬이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밤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상대가 잠들기를 기다려주었다. 그러다 보면 어떨 때는 어릴 적 아주 행복했던 기억을 나누며 ‘그랬었구나.’하고 공감해 주었다. 아니면 조그마한 아이였을 적에 받은 상처를 꺼내어 서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 많이 힘들었구나.’하며 함께 아파해주기도 했다.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집에서 한 침대를 쓰면서 수없이 많은 마음들을 나누었고 심지어는 믿거니 하고 결혼 전에 사귀다가 헤어진 애인 이야기를 하다가 대판 싸움이 나기도 했었지. 그러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더러는 곱다가 더러는 밉다가 해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전화하게 되는 사람.

그 사람은 나의 지우(知友)다.

긴 세월을 함께 살다 보면 어느 땐 너무 힘들어서 내가 그의 등에 업혀가기도 했고 또 어느 땐 내가 그를 업고 가기도 한다. 서로가 힘들다고, 업어달라고 조르지 않아도 서로 등을 내어주며 업히라고 청한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과 형편을 잘 아는 친구, 지우(知友)니까.


왠지 모르게 그의 어깨가 축 처져 보이는 날은 그냥 술상을 본다.

퇴근해서 들어오는 그의 얼굴에 주름이 깊어 보이는 날은 마사지 팩 한 장 붙여준다.

어느 날 그가 외로워 보일 때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며 그를 앞세워 외출을 한다.

젊을 때보다 유난히 그가 더 작아 보이는 날은 가만히 다가가 한 번 안아준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의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 날에는 쓸데없이 싱거운 농을 건넨다.

이제 십년지기라는 말의 세 배를 함께 살아온 그를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잘 지켜주겠노라는 다짐을 해본다.

그 사람은 평생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으니까.

지우(知友)!

오늘 문득 그 아름다운 글자가 내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따스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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