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을 인력으로 하는가?"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
소설 ≪토지≫를 읽고 있다. 이제 1부 1권이다.
“저놈으 늙은이, 자갈을 물리든지 해야겄다. 머 얻어묵을라고 안 죽노.” 최참판 댁의 늙은 종 바우할아범의 앓는 소리에 삼수가 내뱉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돌이가 쏘아붙인다. “명을 인력으로 하는가, 니는 천년만년 살 것 같나?”
-토지 1부1권 44쪽에서 인용/마로니에북스-
그렇다. 사람의 명을 어찌 인력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 자랄 적에 어른들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인명은 재천(人命 在天)’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목숨의 길고 짧음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그 하늘이 저 푸른 창공을 말하는지, 아니면 어느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 신을 말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쨌든 사람이 살고 죽는 일은 우리 인간의 선택 밖의 일이라는 것이리라.
아니면 수천 또는 수만 년의 인간의 역사 속에서 ‘죽음’이라는 그 문제만큼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현재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가 언젠가는 죽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땅 위의 모든 존재가 걷게 될 그 소멸의 길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아 일평생 순례자가 되어 살아간다.
우리에게 죽음이 없었다면 그런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이 세상의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죽음이 없었다면 과연 존재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죽음’은 어쩌면 우리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해주는 요소가 아닐까?
600명 정도 된다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소설 ≪토지≫에서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또 죽는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매일 아기가 태어나고 또 누군가는 죽는 것처럼.
작가 박경리도 작품을 마치고 긴 세월이 지난 뒤 작품의 현장인 하동 평사리에 섰을 때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고 한다.
“서러움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라는 말을 했다.
절대 인력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우리의 목숨, 그러기에 너무도 소중한 우리의 삶을 우리는 한없이 사랑한다. 그리고 끝없이 그리워한다.
작년 여름에 엄마가 먼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