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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Feb 09. 2024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여성이 픽션을 쓰고 싶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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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영국 런던,  1882~1941)의 대표작 중 하나로 페미니즘의 교과서라고도 불리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28년 어느 대학에서 요청받아서 쓴 강연문에 기초한 것이다. 그 강연문의 내용은 ‘여성과 픽션’에 관한 것이다.     

 ‘여성과 픽션’에 대하여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 할 수 있었겠지만, 20세기 초반을 살고 있던 버지니아 울프는 다음과 같은 접근을 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여러분에게 한 가지 사소한 사랑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 즉 여성이 픽션을 쓰고 싶다면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뿐이었지요.”     


 상쾌한 어느 10월의 아침, 옥스브릿지(옥스퍼드와 캠브리지의 합성어로 작가가 만들어 낸 말)에서 한 여성이 잔디밭을 걷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맡은 강연의 주제를 떠올리며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죠. 그 때 그 대학의 관리인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오직 대학의 연구원과 학자만이 잔디밭을 지나갈 수 있고 울프에게는 자갈길을 걸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도서관으로 가는 문 앞에 서있었는데, 도 다른 관리인이 나타나 앞을 가로 막았다. 다소 나무라는 어조로 그녀에게 뒤로 물러서라는 손짓을 했다. 여자는 대학의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추천장을 지참한 경우에만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에 대한 차별이 공기처럼 만연했던 시대였으니 있음직한 일이다.      


 작가는 옥스브릿지 방문과 그곳에서의 만찬으로 인해 많은 질문이 생겨났다고 한다.

‘어째서 남자는 포도주를 마시고 여자는 물을 마시는 걸까? 어째서 남성은 그렇게 부유하고 여성은 그토록 가난한 걸까? 빈곤은 픽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예술작품의 창조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같은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던 것이다.     

 울프는 당시의 여성들이 자기 혼자 쓰는 방을 갖지 못하고 대부분 공동의 거실에서 글을 썼을 것이라는 가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시보다는 집중력이 덜 요구되는 소설을 쓰게 되었으리라고 주장한다.      


 어느 날 한 변호사의 편지가 우편함으로 떨어졌고, 울프는 단지 같은 성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고모로부터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 그 편지를 열어보고 평생 연 500파운드의 연금이 본인에게 지급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유산을 상속 받기 전까지 나는 신문사에 온갖 잡일을 구걸하고, 여기에는 당나귀 쇼에 관한 기사를 쓰고 저기에는 결혼식 기사를 기고하면서 생계를 꾸려 왔지요.” 그런데 그녀의 고모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지갑 안에 은화를 미끄러뜨리면서 생각했습니다. 고정수입이란 것이 누군가의 기질을 이토록 변하게 하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1년에 500파운드만 있으면 햇살아래에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데 말이죠.” 이제 그녀는 누구를 미워할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픽션이 상상력의 산물이긴 하지만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조약돌처럼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픽션은 마치 거미줄처럼, 아마도 아주 미세하게 네 귀퉁이 모두가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거미줄을 비스듬히 잡아당겨 가장자리에 걸고 가운데를 찢어보면 고통 받는 인간의 작품이며, 건강과 돈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집 같은 뼛속 깊이 물질적인 것들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자기만의 방>이라는 작품이 에세이라고 하는데 울프는 갖가지 상상력을 동원한다. 일례로 세익스피어에게 주디스라는 이름의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누이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해보자고 한다. 세익스피어 자신은 필시 그래머 스쿨(중세 이후의 영국의 중고등 학교)에 다녔을 것이지만, 그의 누이는 집에만 머물러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부모가 책과 논문 따위를 보며 허송세월 하지 말고 양말을 꿰메거나 스튜를 끓이는 데나 신경 쓰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단지 200년간이 아니라 태초부터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만큼도 지적  자유를 누리지 못했지요.

 이것이 바로 내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이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에 태어났고, 13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신경증 증세를 보였다. 22살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30세에 레너드 울프와 결혼하고, 59세에 신경증이 재발하여 코트 주머니에 커다란 돌멩이를 넣은 채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남편 레너드 울프가 화장한 그녀의 시신을 어느 정원에 있는 느릅나무 밑에 묻었다.     


 <자기만의 방>이라는 글을 읽으니,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살다간 버지니아 울프의 세상을 향한 분노와 절망과 투쟁을 들여다 본 기분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화가이자 작가였고 여성운동가였던 우리나라의 나혜석과 비슷한 시기에 살다 갔다.

 영국은 1880년 이후부터 기혼 여성이 법적으로 자기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1919년에 여성도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여성으로써 21세기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현재가 참 다행스럽게 느껴지면서도, 지금은 더 이상 여성운동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인지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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