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마음먹었다. 머릿속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표현해볼 수 있는 기회로 삼자. 그렇게 글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 엮을 수 있겠지.
우선 프롤로그를 쓰고, 당장 생각나는 주제로 두어 편의 글을 더 써서 브런치 작가에 응모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호기롭게 시작한 만큼 1년 정도는 틈틈이 시간을 내 꾸준히 글을 썼다. 그런데 현생이 발목을 잡아버렸다. 코로나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업무량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진 탓이다. 덕분에 거의 매일 야근을 했고 주말에는 침대와 한 몸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가 말을 걸어왔다.
아니, 날짜를 세고 있었다고? 수줍은 표정의 이모티콘이었지만 등골이 오싹해졌다. 벌써 270일이나 글을 쓰지 않았구나. 그래도 글이라는 게 마음만 먹는다고 뚝딱 나오는 게 아니지 않나. 생각을 정리하고, 초고를 쓰고, 어울리는 사진도 찾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발행 버튼을 눌러야 하지 않나.
여전히 일은 많았고, 글을 쓸 수 있을 만한 여유는 생기지 않았다.
그래, 300일이나 글을 쓰지 않았구나. 솔직히 말하면 이 당시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글을 멈춘 탓에 다시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생겨도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보러 갔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기도 하고 바람을 쐬러 등산을 가기도 했지만 글을 쓰지는 못했다.
아직 글을 쓸 수 있을 만한 여유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차, 이러다가 1년이 돼버릴 것 같았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1년을 채워버리면 다시 글을 쓰는 것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정신이 번쩍 들어서 퇴근 후 노트북을 가지고 카페에 갔다. 그리고 구석 자리에 앉아 화이트 노이즈를 배경 삼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글을 쓸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생긴 걸까. 무려 11개월 만에 새 글을 발행했다.
참 오래 걸렸다. 사계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이 가을에 브런치로 돌아왔다. 틈틈이 떠오르는 생각을 가볍게 조금씩 써놓기만 해도 언젠가는 글이 완성될 텐데 난 왜 거창한 여유를 찾고 있었을까. 어차피 그 자리에서 다 해치울 수 없다면 며칠이 걸려도, 몇 주가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데 말이다.
의무감에 억지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먹은 이상 꾸준히 해보고는 싶다. 어쩌면 현생이 또다시 발목을 잡을 수도 있고, 한동안 새 글을 완성하지 못해 브런치가 한 번 더 다정하게 뼈를 때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글을 쓸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다는 핑계 뒤에 숨지는 않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