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어려운 말을 섞어가며 음악 이야기를 할 줄도 모르지만, 듣고 부르는 걸 좋아하다 보니 결국 음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게 됐다. 초딩 때부터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노래를 들었고, 끊임없이 서비스 타임을 넣어주시는 노래방 사장님과 기싸움을 하며 서너 시간씩 목이 쉬도록 놀기도 했다. 참 열심히 듣고 불렀다.
음악감상이 취미였던 적 없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필자도 최소한의 음감이라는 건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우리 집 세탁기가 음치인 것 같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빌트인 옵션이 있는 집으로 오게 됐다. 그래 봐야 세탁기와 냉장고뿐이지만 평생 살 집도 아니니 이런 옵션은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게다가 깔맞춤까지 되니 빌트인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탁기도 이전 집 빌트인 세탁기보다 뭔가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보여서 괜히 얼른 돌려보고 싶었다. 첫 입주인만큼 통세척을 한 번 하기로 하고, 청소용 세제까지 준비해서 진심으로 세탁기와의 대면식을 시작했다.
윙윙 돌아가는 세탁기를 뒤로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종료 멜로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세탁기는 슈베르트의 송어를 틀어주는구나. 송어 좋지. 그런데 그 순간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내가 뭘 들은 거지? 믿을 수가 없어서 가장 짧은 코스로 한 번 더 세탁기를 돌렸고 종료 멜로디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 집 세탁기 종료음
누가 반음을 올렸는가. 세탁기 안에서 연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녹음된 멜로디, 아니 컴퓨터로 만들어낸 멜로디를 그대로 재생하는 것일 텐데 대체 어떻게 음표 두 개만 저렇게 되는 걸까. 앞으로 계속 이걸 들어야 한다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사용설명서도 찾아보고 홈페이지 FAQ도 봤는데 '세탁기가 음치예요 어떡하죠'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질문도.
필자가 아는 송어가 기억 저장소에서 왜곡된 송어이고 진짜 송어는 이 멜로디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필자의 기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다른 세탁기들은 정상적인 송어를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 집 세탁기가 음치인 것이다.
챗봇은 습한 장소에 세탁기를 설치하면 이상한 알림 소리가 날 수도 있다는데, 그게 아니라는 버튼을 누르니 출장 서비스를 예약해서 전문 엔지니어의 점검을 받아보라고 한다. 이 더운 날 종료 멜로디 음정이 이상하다고 출장 서비스를 부르면 얼마나 당황스러우실까. 조율을 해보라고 하시진 않을까?
그래 뭐 세탁기가 음정이 좀 불안할 수도 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빨래하면서 스트레스받지 말자. 옆에서 자꾸 알려주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잘 다독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