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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태문 Aug 21. 2019

다낭 한강변의 사람들

더위, 그리고 새벽 운동하는 사람들

하늘을 나는 새들도 땅에 내리면 걷는다. 두 발 가진 사람과 같다. 새들의 걸음은 두 가지다. 걸어 다니는 새와 뛰어 다니는 새. 도시에서 자주 보는 비둘기는 사람처럼 걷는다. 참새는 두 발을 모아 통통 뛰어 다닌다.

당연히 우리와 다른 참새의 걸음에 눈길이 간다. 길을 가다 모이를 찾고 있는 참새를 유심히 살폈다. 비둘기처럼 느긋하게 한발씩 걸어 다니면 좋으련만, 참새는 왜, 힘들게 통통걸음일까. 별스런 생각이다. 참새는 걷기보다 뛰는 것이 더 편하니 뛸 것이다. 

먹이 활동을 하고 천적을 피하기 위해 뛰는 것으로 진화를 했을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최적화되어 진화해 왔으니, 사람이라고 다를 것이 뭐가 있으랴.

본격적인 여름시즌으로 접어든 베트남. 오늘 기온이 27~42도(2019.6.12.)이다. 25층 건물의 12층 아파트에 살지만 아침 7시에 거실에서 베란다 문을 열면 훅하는 열기가 밀려온다.

아내는 “지옥의 열기가 따로 없다”며 너스레다. 베트남의 하루 날씨는 우리와 기온 분포가 다르다. 한국은 오전에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해서 오후 두세 시에 열기가 정점을 이룬다. 베트남은 보통 해가 뜨는 시점부터 바로 더워지기 시작해서 오후 1시에 최고 기온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주 1~2회 정도는 오전 10시경 기온이 최고치에 도달하기도 한다. 6월 12일의 경우를 보면, 오전 7시에 34도, 오전 10시에 42도였던 기온이 오후 1시에 39도로 내려가고, 오후 4시에는 30도로 하락한다. 이러한 기온 분포로 인해 기온이 최고치를 이루는 시간대에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방인인 나만 그런 줄 알았다. 현지인들은 보통 정오경부터 오후 2시까지 가게 문을 닫고, 낮잠을 즐긴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더운 시간대를 피하기 위한 생활의 지혜이다.



노인들이 서로 등을 두들겨 주고 있다

공공기관의 출·퇴근시간이 아침 7시30분에서 오후 5시30분, 점심시간이 11시30분~13시30분까지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전, 오후 각각 4시간의 근로시간을 지키면서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고, 더운 시간대는 쉬는 것이다. 

하루의 기온 변화 차이는 옷 갈아입는 시간대도 우리와 다르게 만들었다. 일부이지만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점심 휴식 후 오후 일을 시작할 때 주로 옷을 갈아입는다. 보통 아침 출근 전에 옷 갈아입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하지만 오전 10시, 한증막 더위에 땀 흘리지 않을 장사가 있을까. 가장 더운 시간대가 지난 오후 2시에 옷을 갈아입고, 한두 시간만 견디면 기온이 내려간다. 오후엔 크게 땀 흘릴 일이 없으니, 이 옷은 다음날 오전까지 넉넉히 입을 수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온대, 열대, 한대의 기온 차이가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 문화는 물론 생김까지 다르게 만들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활동이 해뜨기 전 새벽 시간에 시작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20세기가 혹독한 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평화의 시대이다. 1975년 통일정부를 수립한 베트남은 1986년에 바꾸고(doi), 새롭게(moi)한다는 도이모이(doimoi) 정책으로 지구촌에 문호를 개방했다. 그리고 전쟁에 지친 시민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도시와 농촌의 곳곳에 시민공원을 만들었다.

누구나 운동을 하고, 휴식을 즐길 수 있으며,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이니 만남의 광장, 평화공원이라 해도 무방하다. 다낭의 한강변은 조각 작품과 나무, 꽃들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운동하는 공간이 되어 자연스럽게 만남의 광장이 된다. 다낭의 하루는 해 뜨기 전 한강변에 시민들이 모여 들면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다낭은 요즘 새벽 5시 20분경에 해가 뜬다. 사람들의 활동은 보통 이보다 1시간 일찍 시작된다. 아내는 다낭에 도착한 3월부터 5월초까지는 오전 9시경에 산책을 나갔다. 그러다가 5월 중순 경에 시작된 맹렬한 더위에 며칠을 고생하면서 운동시간을 바꾸었다. 요즘 우리는 새벽 4시 반에 한강변 산책을 나간다.

1시간 정도 산책하면 5시 20분경에 일출. 해가 보이기 시작하면 강변을 벗어나 햇빛을 가려주는 건물 사이로 재빨리 피해 집으로 돌아온다. 해 뜬 이후 늦어도 15분 이내에 집에 도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나마 이 시간대가 아니면 무더운 여름 다낭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별로 없다. 몇 달 동안 잘 다녔던 요가도 더위에 지쳐 포기했다. 

새벽 산책이니 특별히 운동이랄 것도 없다. “새벽에 한강변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주민의 특권이라고 말했던 현지 주민의 말이 생각난다. 100m 남짓 거리에 한강이 있으니 산책하지 않고, 게으름 피울 까닭이 없다.

더위를 피해, 작열하는 태양이 무서워 오전에서 새벽으로 운동시간을 바꾼 덕에 새벽 한강변의 부지런한 시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강변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걷지 않는다는 아내의 고정관념이 깨졌다. 새벽 한강변에서는 파시 같은 장면도 자주 목격된다. 어부는 한강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민물고기를 운동 나온 시민들에게 판다.


다낭 한강에서 생선을 팔고 있는 상인들.

다 팔지 못한 물고기는 한강에 다시 놓아준다. 중년의 여성들은 민물고기를 사고, 바로 옆자리에서 기도한 후에 방생하기도 한다. 물고기의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한강변의 풍경 속에 건강관리를 위한 시민들의 새벽 운동은 점점 더 활발해진다.

새벽 5시가 넘어가면 다낭에서 두 번째로 큰 한 시장(한강 옆에 있는 시장)의 노점상을 선두로 새벽장이 선다. 우리는 산책 후 돌아가는 길에 싱싱한 과일과 채소를 자주 산다. 가끔 갓 잡은 돼지고기를 사기도 한다. 이렇게 한강변은 시민들의 새벽 운동과 먹거리도 연결해 주고 있다. 


다낭 한강변에서는 새벽 운동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젊은 층도 간혹 있지만, 중년과 노년이 차지한 한강변은 체조 구호를 알리는 앰프 소리로 요란하다. 한강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을 만난다.


베트남의 파룬궁 수련자들.

한국에서도 자주 보는 작은 녹음기 소리에 맞춰 기공을 수련한다. 우리처럼 부부가 오거나, 친구와 같이 나오거나, 혼자 나온 사람들도 많다. 모두 한강과 저 너머 미케 해변에서 올라올 여명을 기다리며 운동을 한다.

새벽 운동의 압권은 노년과 장년의 여성들이 벌이는 집단 체조이다. 리더가 있는 팀도 있으나, 대부분은 가져온 앰프 소리가 팀의 리더 역할을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음악의 템포가 느려진다. 장년 여성들의 줌바댄스(Zumba dance)는 격렬하고 빠르다.


베트남 중장년 여성들의 줌바댄스를 추는 모습.

특별히 크리스마스가 없는 이곳에 6월의 새벽인데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빠른 비트의 캐롤이 새벽운동을 지휘하기도 한다. 집단운동을 하는 여성들과는 다르게 우리와 같은 보폭으로 걷는 사람, 웃통은 벗은 채 성큼성큼 빠르게 걷는 중년 남성들도 있다.

도로 위를 뛰는 젊은 조깅 마니아들, 사이클 동호회도 있다. 배드민턴도 각광받는 아침운동 목록이다. 우리 부부도 조만간 배드민턴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시장조사기관(유로모니터)의 발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베트남의 가처분소득 5천~1만 달러 수준의 인구는 전체의 34%나 되었다. 이들은 전형적인 중산층에 해당한다. 중산층은 2030년에 49%로 절반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 국민소득 2천5백 달러의 2~4배 수준의 중산층이 건강관리를 위해 새벽운동을 하는 핵심 계층일 것이다.

또 다른 새벽 한강변 운동의 주력계층인 65세 이상의 고령층은 베트남 사회의 미래를 바꾸게 될 신 소비층으로 부상 중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30년에 전체 인구의 12.4%가 될 것이다. 베트남이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에 바짝 다가서는 것이다.

고령층의 구매력은 연평균 5%p씩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나이 많은 소비자들은 젊어진 것처럼 느끼고, 행동하고, 대우받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새벽 한강변에서 고령층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은퇴하고 있는 한국의 베이비부머와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고령층도 자신만의 삶과 가치를 추구해 나갈 것이다. 

한강변은 장년과 고령층의 독무대가 아니다. 운동하기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공간이다. 새벽은 장년과 노년층이 주도하고, 저녁에는 청년들이 한강변을 점유한다. 청소년들은 힙합 댄스를 추고, 청년들은 한강변의 선술집(Pub)에서 가수의 노래에 맞추어 맥주와 음료수를 마시며, 춤추고 즐긴다. 한강변은 세대별로 점유 시간을 달리하면서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에 일하러 온 근로자에게 베트남 사람들의 운동에 대해 물었다. “베트남 사람들, 운동 안 해요.” 그는 딱 잘라서 베트남 사람들은 운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운동을 많이 하는지를 보아온 터라 그 근로자는 상대적 차이를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2천5백 달러의 국민소득으로 새벽운동은 이른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새벽 운동은 아직 생소한 것, 분에 넘치는 사치쯤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후 시민들을 위해 전국에 수많은 공원이 만들어졌듯 그곳에서 시민들이 운동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일과 휴식은 우리가 가진 두 발의 자연스런 조화, 균형 잡힌 걸음걸이와 같다. 비둘기가 걷고, 참새가 뛰는 것이 최상의 생존 전략이듯 말이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것이 우리를 위한 맞춤형 건강법이다.

햇볕을 피하려는 베트남 사람들의 지혜가 전통모자 논라(non la)를 만들었다. 더위를 극복하려는 창의성이 짧은 낮잠 문화가 포함된 2시간의 긴 점심시간을 만들었고, 활동은 새벽부터 일찍 시작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이 환경에 맞게 그들의 생활을 순응시킨 것이다. 

앞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점점 높아가는 경제 소득에 맞게 소비나 생산과 같은 경제 활동도 진화시킬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거쳐 온 과정에 대비하여 베트남의 경제 활동 진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변화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베트남의 경제 성장을 돕고 한편으로는 베트남에 진출했거나 하려는 우리 기업들에게 열린 기회를 줄 것이다

출처 : 뉴스퀘스트(http://www.newsquest.co.kr) 2019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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