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일기 240924
월남쌈을 먹었다. 셋째 이모와 넷째 이모가 나를 살찌울 작정인 게 분명하다. 나는 비건인데도 텍사스에 와서 살이 찌고 있다. 너무 맛있는 게 많다. 비건 아이스크림의 유혹을 떨치기가 어렵다. 월마트에 가서 또 비건 아이스크림을 쟁여놔야 하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장장 4시간이나 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 영화, 음악, 예술, 고민, 오타쿠, 애니메이션, 텍사스, 한국 등 갖가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 사진첩을 정리했다. 혹시나 나를 구할 것 같아서 모아두었던 많은 동영상들과 사진을 삭제했다. 디지털 저장 강박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 게 실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에게는 해당되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싹 비웠다.
장강명 씨 <뤼미에르 피플>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보스턴에 가 있는 사촌 여동생에게 좋은 책이 많아 다행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은 벌써 다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장강명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친구의 추천처럼 좋은 작가인 것 같다. <뤼미에르 피플>은 그 연작 소설의 구성상 개인적으로 아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이베이에서 산 시계를 받았다. 티쏘의 ‘바나나’라고 불리는 모델이었다. 아무래도 중국 짝퉁이 의심되어서 시계의 뒷 케이스를 열었다. 그 과정에서 8개의 나사 중 1개를 떨어뜨려 영영 잃어버렸다. 열어서 살펴본 시계의 안쪽은 스위스의 무브먼트가 맞았다. 결국 나는 7개의 나사로 시계의 뒤판을 닫았고, 내 새 시계는 졸지에 이빨이 하나 빠진 신세가 되었다. 불완전하고 나사 하나가 빠져있는 모습이 아주 속상했다. 나를 닮았다고 느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오늘도 조깅을 무사히 마쳤다. 3마일을 달렸다. 시원하게 땀에 젖었고, 샤워기로 땀을 씻어냈다. 내일도 이만큼 달려야지. 내일도 이만큼 달리고, 이만큼 시원해야지. 내일은 스윙댄스를 가는 날이다. 가서 또 아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금요일에는 뉴올리언스에 간다. 기대와 설렘이 조금씩 싹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