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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 Anyway

: 다 똑같다

by 낙타

“드디어 내일이면 휴일이다!”하고 노래 부르면서 퇴근하고 집에 오니 웬걸? 매니저 E가 아프니까 이틀 연속으로 더 일해달란다. 지난 5일 간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그건 안 되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려는 찰나, 이미 나의 근무시간표는 바뀌었고 바뀐 그대로 슬랙에 공유되었다. 며칠간 하루 종일 서있던 탓에 쑤셔오는 다리를 쥐어 잡고 어버버버하는 사이에 이미 근무가 결정됐다. 마시려고 따라두었던 위스키를 싱크대에 그대로 쏟아버리고 짜증이 나서 곧장 잠에 들었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 N은 출퇴근길이 1시간이 넘어간다. 문제는 새로 부임한 매니저 E가 N의 출근 30분 전에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한 것이다. 졸지에 N은 근무지에 거의 다 와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하고 싶어도 오지 말라는데 뭘 어떻게 하겠는가? 다음날에 와서야 N은 E에게 사과를 받은 모양이었다.


사장인 T는 곧잘 나를 가리키며 “얘가 한국인이라 그래”하는 말을 손님에게 했다. 보통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듣거나 주문을 잘 못 받고 있으면 T가 어김없이 나타나 웃으며 저 말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 버린다. 졸지에 한국인임이 드러난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조용히 옆으로 물러선다. 대체 T의 말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T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 안다는 식으로 눈을 마주치는 T와 손님의 웃음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멋대로 근무 스케줄을 통보하고, 당일에 출근 시프트를 철회하고, 근무 중에 손님이 없단 이유로 직원을 ‘꺾어’ 쓰고, 직원에 대해 손님과 이야기하며 모욕하고.


몽 피투에는 인권과 관련한 명확한 지침이 존재한다. 그건 아마 사장 T와 J의 문제의식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인권단체에서 오래 활동한 나는 이러한 점 때문에 더 열심히 일을 했고 몽 피투에도 애정을 가졌다. 그래서 쉬는 시간을 아껴가며 더 열심히 일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까보니 결국 허울뿐이라는 걸 알 수 있어서 더 허탈한 지도 모르겠다.


사장인 T와 J는 빅토리아 섬에서 짧은 휴가를 즐기고 있다. 이번 주말이 J의 생일이어서 그걸 기념하기 위한 여행이라고 한다. 매니저 E는 집에서 쉬는 모양이다. T와 J의 여행이 모쪼록 즐겁기를, E가 빠르게 쾌차하기를 바라면서 어쨌든 나는 새벽 5시에 자명종 알람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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