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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리얼중독자 May 04. 2024

당산역 조깅

틴더는 러닝 메이트를 구하기에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틴더에서 만난 사람과 조깅을 하기로 약속했다. 이게 과연 좋은 생각일까?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했다. 약속 장소는 당산역 4번 출구, 약속 시간은 8시. 출구 앞에는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 의자에 앉아 틴더를 켰다.
“죄송해요, 조금 늦어요”
상대에게서 채팅이 왔다. 손목시계가 8시를 넘기고 있었다.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 채팅을 보냈다. 틴더에서 다른 사람들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며 시간을 죽였다. 사람들의 사진에 좋아요를 남겼다. 이들과 연결되고 싶었다.
그럼에도 역시 틴더를 하는 건 좋은 생각 같지 않았다. 틴더를 해온 몇 년간, 벌써 몇 번째 연애 같지 않은 연애, 만남 같지 않은 만남을 가졌다. 상대와 만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몸을 섞고, 다음날이 되면 어정쩡하게 연애를 시작했다가, 버벅거리며 카톡을 하다가, 몇 번의 대화를 절다가, 손쉽게 헤어졌다. 몇 개의 연락처를 차단하고, 몇 개의 사진을 지우는 방법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라리 러닝 메이트를 구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연애도 원나잇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라면 같이 운동이라도 하는 사람이 나았다. 되도 않는 감정을 남기기보다 차라리 운동을 남기는 게 나았다.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을 때 옆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의자에 앉은 채 옆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분명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구나.
“아, 안녕하세요?”
“네.”
“어, 오늘 조깅하기로 했죠?”
“네.”
눌러쓴 볼캡과 러닝복. 나보다 조금 연상의 사람. 어둑한 밤하늘 아래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님을 닮은 묘한 인상. 상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저.”
“네?”
“저 기억 안 나세요?”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도교수님을 닮았다는 것 외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요, 기억이 안 나는데 만난 적이 있었나요?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입을 열었다.
“저예요, B.”
“B? 아.”
얼굴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래, 이름만큼은 기억이 났다. 만난 지 2시간도 안돼서 함께 모텔에 들어갔던 사람. 만난 지 2일도 안돼서 헤어진 사람. 정확히는, 내가 다른 사람과 만나면서 일방적으로 차단했던 사람. B였다. 어색한 상황이었다.
“아, 그럼 조깅은 못하겠네.”
“아냐, 조깅, 해야지.”
B가 말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조깅은 나 혼자 할 거고.”
짝. B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왼뺨을 올려붙였다. 고개가 조금 돌아갔고 뺨은 얼얼했다. 얼이 빠진 표정으로 B를 바라보았다.
“나쁜 새끼.”
B는 휙 돌아 떠나버렸다. 사라지는 B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당산역 4번 출구에 잠깐 서있다가, B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한강이 나왔다. 몸을 풀고, 조깅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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