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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릴리 Sep 02. 2022

3화. 유니콘 잔혹사 - 회사 오너편

끝을 정해놓은 인사팀과 대화하는 일 D-102

회사의 오너는 직원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할지언정)


글로벌 회사에서 규모있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내게 J의 회사는 적극적이었다. 그 적극성이 싫지 않았던 나는, J의 회사와 몇번의 만남을 거쳐 채용 프로세스를 밟는 데 동의했다.


회사의 오너이자 창업자이자 대표이사인 J를 만난 것은 2020년 겨울 초입이었다. J의 회사로부터 오퍼레터를 받은 상황이었지만 그 오퍼를 수락해야하는 지는 확신이 없었다. J는 그런 나의 주저함을 눈치챘는지, 입사 확정 전 캐주얼한 면담을 요청 받고 회사로 방문한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오시게 되면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을 겁니다. 조직에 대해 생각하시는 그림, 원하시는대로 마음껏 그려보세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 실패를 만회할 수 있도록 백업할 것이고 성공하실 수 있게 도와드릴테니까요"


2021년 1월, 나는 J의 회사의 직원이 되었다.

들어와서 경험한 회사는 급성장하는 과정에 다양한 사업을 펼쳐가는 복잡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담당해야할 것으로 파악되는 프로젝트들만 몇십가지 였고, 우선순위를 잘 잡고 하나하나 전략을 가다듬는 것의 난이도가 상당했다.


이 시기 나는 J와 적잖은 대화를 했다. J는 한달여만에 전사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해결을 위한 전략을 하나하나 세워가는 나의 능력을 높게 샀고, 조직 전체적으로 힘을 실어주었고 나에게 신뢰를 보여주었다.


J의 회사는 수평한 조직 구성과 동료들 사이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피드백 문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내가 몸담았던 글로벌 회사의 유사 문화를 케이스 삼아 자신의 회사에 이식하고 싶어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록 업무적인 사안이라면,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평하게 수렴할 수 있듯이 나 역시도 J를 회사의 오너가 아니라 동료로서 수평하게 대해도 용인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오너이자 대표인 J의 행동에서 부족함이 보일 때, 솔직하게 이야기하려는 용기를 냈고 J는 그 이야기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글로벌 회사에서 적용되던 솔직함과 직설적인 피드백이 J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21년 11월이나 되어서였다.


1억원이 상회하는 프로젝트를 킥오프한 것은 2021년 9월이었다. 당시 J는 프로젝트의 목적과 필요성을 공감했고, 나를 프로젝트 총괄로 일임했다. 재무 법무 홍보 사업, 사내 관계자 대상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광범위하게 설명드리고 가능한 범위 내의 모든 관계자들과 함께 프로젝트의 주제를 선정했다. 논의를 바탕으로 결정된 주제의 결과물 초안이 그 해 11월에 완성되었다. 결과물을 J에게 공유했다. 불만이 격하게 표출되었다. 왜 이 프로젝트를 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주제 선정도 공감할 수 없다고 했다. 금액 책정에 대해서는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여러차례 보였는데, 전사 직원이 보는 채널로 프로젝트를 리드한 내 개인에 대해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회사 동료들이 나에 대해 부정 의견을 외부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J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신뢰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것을 동료들 모두 알아차렸다. 직설적이고 솔직한 태도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 불편했던, 그리고 나로 인해 자신의 입지에 침범이 있었다고 생각했었던 주변의 동료들은 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J는 상황이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시간을 두고 나를 지켜보았다. J는 나에 대한 신뢰가 이제 끝이 났음을 알리는 시그널만 간헐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조직 내 동요가 일고 결국 내가 수세에 몰릴 것이라는 것을 동물적으로 알고 있었으리라.


J가 우리팀 신입사원과 면담을 한 것은 2022년2월이었다. 이미 나에 대한 부정여론이 적지 않았던 상황에서, J는 신입사원에게 나의 평판을 조회했다. 좋지 않았다. 그러자 J는 신입사원에게 나를 대상으로 한 공식적인 인사 피드백에 총대를 메어줄 것을 요청했다.


2022년3월, J와 인사 담당자, 신입사원이 함께한 자리에 나는 인성이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받는 대상으로 배석했다. 회사의 오너이나 창업자이자 대표이사가 2시간여간을 배석한 이 자리는 공식적인 회사의 인사 절차였다. 나의 부족함을 지적하기 위해 정리된 사실들은 신입사원이 무리하게 만들어낸 내용이 많았다. 조금만 확인해도 사실관계가 다 틀어지는 내용들 위에 이루어진 지적사항들이 대다수였는데, 그 내용을 들은 당시의 나는 딱히 이렇다할 반박이나 해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당혹감이 컸다. 이 자리는 J의 요청이었고 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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