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Call Me by Your Name. I Call You by My Name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이 책을 다 읽는 동안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OST “Mystery Of Love”를 나지막하게 계속해서 틀어놓았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읽는 동안 설레며 보았던 영화 일부분과 오버랩 되어 연상되는 장면들이 많았지만, 소설 자체만으로 상상할 수 있는 그들의 다양한 장면들이 꽤 인상 깊게 떠올라 한 줄 한 줄 읽고 또 읽었다. 마치 번역되지 않은 원서를 읽는 것처럼.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엘리오라는 소년과 올리버라는 청년의 1980년대, 이탈리아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한여름을 배경으로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엘리오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이야기이다. 첫 몽정 같은 사랑 얘기이다. 동성애라는 코드에서 예전에 보았던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 소설은 동성애의 사랑보다는 인간 대 인간이 느끼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정상적인 사랑일 리 없다고 말할 것이다. 영화보다도 더 적나라했던 엘리오의 올리버에 관한 사랑이야기에 나 역시 적잖이 놀라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엘리오의 눈부시도록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사랑의 형태를 떠나서 한 인간을 이렇게도 열렬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에 부럽다는 생각과 그 형태로 말미암아 굉장히 설레는 감정이었다.
처음의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을지라도 그것이 육체적인 사랑의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건, 더 없이 내 영혼을 나눌 정신적인 그것의 채워짐에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탐닉하고 어루만진다. 정해진 시간 안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우리들의 사랑을 어떠한 형태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정해지지 않은 해답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채 각자 생각할 뿐이다.
절제하려 해도 더는 절제할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그들은 평생 잊히지 않을 기억의 단편을 이루어간다. 나는 이러한 사랑을 지금껏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이 동성임에도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내 마음을 내주었다. 이토록 찬란한 기억을 너무나도 눈부시게 표현한 작가의 문체에 반하여 다른 책보다도 유독 오랫동안 되뇌어 읽은 이유이기도 하다.
짙은 녹음이 가득했던 한여름의 그곳에서 그들이 늘 함께 했던 이른 아침의 수영, 나른한 아침 식사, 정원에서의 작업, 광장으로의 나들이, 해안의 바위에 걸터앉아 나누는 대화, 모네의 언덕, 함께 달렸던 자전거 길, 해 질 녘의 프렌치 창 밖 발코니로 보았던 선셋. 모든 게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올리버 그가 천국이라 불리었던 수영장 가, 그의 에스파듀, 선글라스, 파란 셔츠, 빨간 수영복, 반바지. 늘 그를 그리며 피아노를 편곡하고 일기를 끼적였던 엘리오의 노트, 캐모마일향이 가득 베인 새하얀 침구. 이탈리아의 작은 바다마을 어딘가에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만 있을 것 같다.
영화에서는 엘리오가 올리버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게 되면 피아노 배경음악이 나지막하게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올리버의 마음을 모른 채 그를 향한 엘리오의 혼자만의 사랑과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피아노 선율로 그려낸 것이라는 어느 유투버의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신이 알았으면 해요.”라는 직접적이지 않은 그의 사랑 고백과 배경음악의 적절한 조화로 잊히지 않는 장면으로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영화에서는 생략됐을법한 엘리오의 절절한 마음이 더 생경하게 표현되어 많은 장면을 상상케 한다.
올리버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떠났던 사흘간의 로마여행에 관한 얘기들 또한, 영화의 표현과는 달리 더 상세하고 빛나는 기억들로 서술하고 있다. 로마의 밤거리에서 알지 못했던 만인들과 격의 없이 친구가 되어 술잔을 기울인다.
내일의 걱정 없이 오늘을 즐기는 ‘산클레멘테의 신드롬’이라는 시를 쓴 작가의 북파티는 평소 기쁠 것 없이 섬세하고 예민하기만 한 엘리오를 많이 웃게 한다. 산타마리아델아니마의 골목길에서 그들의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를 짙은 입맞춤을 나누며 엘리오는 곁에 함께 하는 올리버의 존재를 각인한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올리버는 자신의 선택이 맞는지 아닌지를 여전히 고민하다 결혼을 하고 평범한 가정을 이룬다. 엘리오는 처음 올리버와의 관계에서 어쩌면 영원히 변질되어 이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삶이 시작되리라 짐작했던 것처럼 여전히 혼자인 채 살아간다. 자신과의 추억을 잊어버린 듯 말하는 올리버에게 엘리오는 그것 또한 상관없다 말하며 자신은 잊지 않고 있노라 되뇐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그들이 마주했을 때,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고백한다. 그 둘의 순수했던 사랑을 외면하지 않았던 엘리오의 다감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너를 잊지 않았노라고 올리버는 늦은 고백을 한다.
엘리오보다 조금 더 어른이었던 올리버가 오히려 훨씬 더 혼란스러웠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체성의 모호함을 제대로 잡아가길 바랐던 올리버의 걱정과 그 이면에 더 앞섰던 엘리오에 대한 감정을 세세하게 알게 된 것 또한 영화와는 다른 소설이 주는 재미였던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었을 때, 엘리오를 연기했던 티모시 샬라메는 소설 속의 그와도 너무도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모시 샬라메 이외의 엘리오는 달리 상상이 되지 않았다.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없지만, 특히나 성인이 되기 위한 청소년기는 더욱 특별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남보다 외로움을 더 많이 탔던 엘리오에게는 다행히 그를 위로하는 저녁노을이 있고, 피아노와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여름 바다, 자전거로 가로지를 올리브나무숲, 모네의 언덕이 있고, 그를 둘러싼 가족의 사랑이 존재했다.
평범치 않은 그를 나무라지 않고 우정이라 감싸주었던 훌륭한 부모가 존재하였고, 자신의 방식으로 그를 돌보았던 안킨세스와 마팔다, 어쩌면 엘리오와 결혼했을지도 모를 마르지아. 올리버와 엘리오의 진심을 이어준 비미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완전했던 그의 존재에 영혼을 불어넣고 살아가게 한 올리버. 그를 만나고 엘리오는 삶에 관한 시선을 바꾸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후회하고 두려웠지만, 자신에게 잠재하는 모호함을 시험하여 결론을 내고 싶어했고, 그 끝을 확인했다. 그에게 매달렸고 평생을 기억할 사랑을 얻었다. 이전 같지 않으리라는 자기혐오에 가까운 두려움의 시작이었지만, 그는 결국 후회하지 않는 삶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음에도 감정의 거짓 없이 써내려가는 엘리오의 구구절절한 마음들이 너무 애잔했다.
성인이 되어 올리버에 전화를 건 그가 그들만이 기억할 언어로 올리버를 부른다. “엘리오.” 자신의 이름으로 그를 불렀지만, 그들만의 놀이를 잊어버린 듯 올리버는 자신의 이름으로 엘리오를 부르지 않는다. 사실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는 올리버의 마지막 말이 엘리오에 대한 그의 마음을 대신한다.
300페이지에 가까운 이 소설 속에는 그들의 이야기만큼이나 이탈리아 외곽의 아름다운 소도시의 풍경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눈을 감으면 글에 쓰여진대로 그 잔상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언젠가 꼭 한 번쯤 이탈리아 외곽의 그곳을 둘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이탈리아의 한여름을 마음껏 만끽한 듯하다.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그들이 좋아했던 늦여름의 오후와 흔들리는 야자수 이파리와 로즈메리 향기, 프렌치 창을 활짝 열어두고 세상과의 사이에 커튼 한 장만 남겨두길 좋아했던 장면들을 기분 좋게 상상할 수 있었다. Se l’amore, 이런 게 사랑이라면 올리버의 말처럼 <나중에!>가 아닌 지금 당장 지독한 사랑에 이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