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대학에 입학했다.
수능 대박이 난 덕에 기대하지 않았던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전공은 재료공학. 금속공학을 전공하셨던 아버지가 추천한 덕에 큰 고민 없이 선택했다. 공대를 가는 것은 예전부터 정한 바였고 전기, 컴퓨터, 바이오 같은 전공은 빠른 트렌드를 따라가기 버거울 것 같아서, 기계, 화학, 토목 같은 전공은 한 분야를 엄청 파는 느낌이라 어려울 것 같아서, 전공 공부도 덜 빡빡한 것 같고 여기저기 응용하기 좋을 것 같은 재료공학으로 결정. 이렇게 보니 졸업하기 쉬운 학과를 고른 느낌인데 실제로 그래서 다행이었다.(...) 물론 위에 나열한 전공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커리큘럼의 부담이 적었다는 거지 그래도 공대는 공대. 대학에서 전공 공부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전념하며 열심히 술을 먹고 다녔지만 간신히 종합 B0로 졸업을 했다. 이것도 재수강을 여러 개 해서 9학기 만에 만든 결과다.(...)
2007년 9월,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에 와서 할 큰 결정 중 하나가 군대를 언제 어떻게 복무하느냐. 주변 선배 및 동기들이 육군, 공군, 카투사, 병역특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복무하는 걸 보고 역시 쉬워 보이는 길 우선으로 골랐다. 첫째로 다들 지원해 본다는 카투사, 영어점수가 모자라서 지원하지 못했다.(...) (훗날 나는 해외사업을 맡아 개고생 하며 생존 영어를 강제로 공부하게 된다.)
다음은 병역특례 산업기능요원, 주변에서 정보처리기사를 딴 후에 IT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3년간 복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안 그래도 컴퓨터, IT 같은 전공이 무서워서 재료공학으로 피해왔는데 생판 모르는 공부를 다시 해서 IT 일을 한다? 이것도 패스.
마지막으로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 석사학위를 가지고 전공 연관 연구소에 들어가서 3년간 복무하는 제도. 군복무를 가장 늦게까지 미룰 수 있고(...) 대기업이나 연구소에 취직할 수도 있으니 이게 가장 좋겠다고 골랐다. 전공은 재료공학 대신 기술경영. 어차피 박사는 안 할 거고 재료공학이 막 재밌지도 않았고 상경계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술경영이라는 융합전공 대학원이 있어서 큰 고민 없이 선택. 일전에 아버지께서 공학이랑 경영학 둘 다 공부를 해봐라 한 것도 참고가 되었다.
석사과정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나는 연구를 하면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석사과정 중에 인턴을 하다가 거기 프로젝트가 재밌고 같이 일하는 형들이 좋아서 6개월 휴학하고 인턴 생활, 졸업논문을 잘 못써서 심사에 떨어지는 바람에(...) 6개월 연장, 남들이 2년 만에 하는 석사 졸업 3년 만에 했다.
2010년 8월, 첫 직장에 입사했다.
졸업 준비를 하며 대기업, 연구소 전문연구요원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정책이 바뀌어서 대기업, 연구소 TO가 거의 없어지는 날벼락이 떨어졌다.(한 친구는 대기업에 합격했는데 TO 문제로 취소되기도) 대기업이 문제가 아니라 중소기업도 자리를 걱정해야 할 판. 다행히 막차를 타고 판교의 작은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초기 1년은 좋은 팀장과 선임 덕에 적당히 일 배우며 잘 지냈는데 갑자기 팀장과 선임이 모두 그만두고 혼자 일을 다 맡으며 지옥을 겪게 된다. 그 이야기는 아래의 글에.
https://brunch.co.kr/@marenightjm/32
비전이 없고 직원을 소모품으로 대해서 이직률이 높은 중소기업을 겪으며 어떤 회사에 가야 하는지 어떤 회사는 가면 안 되는지 그리고 왜, 어떻게 직원이 탈출하는지 배웠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많은 참고가 된다.
2012년 8월, 두 번째 직장에 입사했다.
제조 대기업 연구개발 조직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3년 간 일했다. 기업문화가 괜찮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정말 좋은 팀장과 선임들을 만났다. 일의 방향을 잘 잡고 외부와 협업에 능하며 팀원들에게는 따뜻한 팀장 A, 우직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선임 B, 일을 치고 나가는 아이디어 뱅크 선임 C, 그리고 시키는 건 겁내지 않고 하고 보는 내가 있었다. 4명의 작은 팀 조직이 효과적으로 돌아가는 걸 경험하며 많은 걸 배웠다. 업무적으로는 프로젝트 개발 체계, 경영진의 의사결정 체계를 관리하는 일을 해서 넓게 일을 배우고 여러 직급의 사람들과 소통 및 협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출근해서는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와 주말에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 친구들과 시간 보내며 즐겁게 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2014년 어느 날, 아버지께서 말씀을 꺼내셨다.
회사에서 중국 사업을 제대로 해보려고 하는데 네가 해볼 생각 없냐.
아버지 회사요? 중국이요? 저 곧 결혼도 할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