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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남이 Aug 10. 2020

마지막 춤은 누구와 함께

마이클 조던과 일한다는 것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만나는 일은 늘 즐겁다. 당사자에게도 대중에게도 그 시절 회고는 의미가 있다. 함께 추억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하는 쪽에서도 듣는 쪽에서도 무척 설레는 일이다. 그런 특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마이클 조던이기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 '더 라스트 댄스'에 관한 이야기다.


농구는 잘 모른다. 아는 농구 선수가 슬램덩크의 강백호 정도(?). 화면을 보는 내내 만화가 아닌 실제 사람이 저렇게 점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농구를 몰라도 조던을 몰라도 눈과 귀가 충분히 즐거운 다큐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요즘 이런 역동적인 스포츠는 대리만족으로 그만이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격렬한 운동, 만 명이 넘는 관중의 환호가 오래된 화질을 통해 전달되니 그 시절이 더욱 옛날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그런 광경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What time is it? Game time!!  


마이클 조던은 비현실적인 사람이다. 동료들은 말한다. 신이 조던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그가 인간 세계의 사람과 구분되는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오직 승리. 게임에서 이기는 것. 그것을 위해서 총력을 다한다.  '총력을 다한다'라는 언어로 조던을 표현하는 것은 뭔가 부족하다. 그 어떤 강인하고 단단한 단어를 사용해도 그를 제대로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조던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묘사되는가'가 이번 글의 챌린지일 정도다.


조던의 전기를 쓴 마크 밴실은 말한다. "마이클의 재능은 점프력, 속도, 득점 능력이 아니었다. 마이클의 재능은 현재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유명세를 타며 온갖 루머에 시달리면서도 시즌을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오로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경기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목표를 세우고 게임에서 이기길 원하고 그에 따른 노력을 한다. 하지만 과거에 발목을 잡히고 미래는 불안해한다. 그렇게 목표에 대한 집중력은 흐려진다. 조던은 승리에 집착적으로 매달린다. 이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면 가상의 이유를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자신을 자극할 만한 거리가 된다면 아무리 하찮은 이유라도 건져 올린다. '네가 오늘 그렇게 웃었다 이거지. 내일 경기는 가만 두지 않겠어'.  




'나의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루틴 한 일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지. 더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이 일을 계속하면 정말 내 영역이 생기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걱정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다큐를 보고 있자니 운동선수의 일이라는 것이 매번 비슷한 보고서를 쓰는 내 일 만큼이나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 시즌 같은 일정의 경기를 치르면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조던은 돌아오는 모든 경기마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경기, 한 경기가 쌓여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되었다. 어쩌면 그가 매 경기마다 이겨야 할 상황을 설정했던 이유도 그의 남다른 승부욕 때문이라기보다 최선을 다하기 위한 그 만의 치였을지 모른다. 그런 유치한 이유에 승부욕이 끓어오른다는 것이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말이다.   




천재와 일한다는 것은


어렸을 때는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가 가진 패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마이클 보다는 팀원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마이클의 그늘 아래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세상의 주인공은 마이클 조던이었을지 몰라도 그들 인생의 주인공은 그들 자신이었으니까.


마이클의 완벽한 조력자였던 '피펜'은 늘 NBA의 이인자였다. 우리 모두알고 있다.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팀을 위하는 결정이 더 영리한 방법이라는 것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어 지기도 한다. 그는 마이클이 잠시 야구를 하러 간 사이 팀의 리더를 맡았다. 아주 중요한 경기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골을 넣고 싶었지만 감독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꼈고 경기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많은 비을 받았다. 피펜은 이 일에 대해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했다. 훗날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기록될지라도 그 순간에는 자신을 지켜야 했을 것이다. 언제까지 누군가의 동료로만 남을 수는 없다. 그도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합당한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일찌감치 자신의 역할을 감지하고 협조한 사람도 있다. '팩슨'과 팩슨의 후임 '커'다. 커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입단해서 노력하는 부류'라고. 팩슨은 커에게 조언한다. "마이클의 보조 역할을 해야 해. 마이클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해." 커는 팩슨이 그랬던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마이클이 골을 맡길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냈다.


마이클 조던과 피펜과 데니스



시카고 불스의 팀원들은 마이클 덕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마이클이라는 천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3 연속 우승을 두 번이나 하는 기록은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시카고 불스에 승리의 DNA를 장착시킨 것은 마이클이다. 마이클의 성공을 함께 맛보며 자신감을 키웠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도 치러야 했다. 마이클은 자신의 기준에 팀원들이 맞춰주길 바랐다. 바랐다기보다 맞추지 않으면 용납하지 않았다. 욕을 하고 화를 내며 매섭게 다그쳤다. 팀원들은 늘 그의 눈치를 봐야 했다. 선수들은 마이클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고, 그를 이해하면서도 미워하지 않았을까. 마이클의 열차에 올라 타는 일은 꽤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일이었다.


팀을 이뤄 일한다는 것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다. 자유로운 악당 '데니스'는 "경기는 공짜로 뛸 수 있지만 우리가 돈을 받는 이유는 코트 밖의 감정이나 압박들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누구나 인정하는 능력자와 일하게 된다면 더욱 양가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의 성공이 그 사람의 것은 아닌지, 내가 그 사람의 기대치에 잘 맞춰 가고 있는지, 그 사람의 그늘을 벗어날 나의 무기는 무엇인지 등. 천재와 함께여서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과 더불어 그의 능력에 압도된 불안함 등의 감정이 뒤섞인 채 자신 지켜내고 있지 않았을까. 자신감과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해야 했을 것이다. 천재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리 넘으려 해도 넘지 못하는 벽을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자신의 한계가 더 자주 드러나보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에 따른 보상도 확실하다. 뭘 해도 되는 사람의 성공 경험은 매우 특별하니까. 내 생에 최고의 팀을 만날 기회이기 때문이다.


  

찐 팀으로 가는 길


라스트 댄스 시기에 시카고 불스에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명의 리더가 있었다. 마이클이 팀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스타일이었다면 감독 필은 선수 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균형을 맞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스타플레이어 한 명에 의지하는 무늬만 팀인 시카고 불스를 '찐 팀'으로 만들어낸다.  


마이클 조던과 필 감독


사실 마이클은 혼자로도 충분한 사람이다. 목표를 정하면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변수는 '팀원'이었다. 부상을 빌미로 경영진과 기싸움을 벌이는 피펜, 고삐를 조이기만 하면 망나니처럼 뛰쳐나가는 데니스, 자신의 잠재력도 모른 채 평범한 수준의 노력을 하는 기타 등등의 선수들. 그가 이런 변수의 다양함을 받아들이고 변수를 믿을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바로 필 감독이다. 필은 '내가 최고인 조던'과 '나도 중요해 라고 말하는 선수들'을 한 바스켓에 아주 잘 다듬어 넣었다. 다그침과 포용의 환상의 리더십 콜라보가 역대 최고의 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 두 가지 리더십 중 어느 것이 더 좋은지 선택하곤 하는데 두 종류가 함께 하는 팀이었던 것..!


이제 '나의 팀'으로 돌아가 본다. 우리는 성공하는 팀인지. 현재에 얼마나 충실한지. 우리 팀의 마이클은, 감독 필은 누구인지. 나는 어떤 부류의 팀원인지,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격려하고 자극하고 있는지. 우리가 지금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우리의 라스트 댄스는 어떻게 될지. 20년 후의 인터뷰를 상상해본다. 부디 승리의 추억이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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