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를 읽고
아빠는 안락사를 할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엄마의 주문으로 식탁에서 삶은 머위대나물 껍질을 벗기고 있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멀뚱히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내가 죽는 걸 내가 결정할 수 있으면 좋지. 근데 우리나라는 안 될 거야. 고려장 생각나잖아. 나는 연명 치료 거부 신청도 해놨고 장기 기증도 해놨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빠 장기를 누가 갖다 쓰냐. 술에 다 쩌들어가지고.
나는 아빠에게 다시 물었다.
아빠는 할아버지 임종을 지켰어?
못 지켰지. 근데 할아버지가 추석 다음날 돌아가셨잖아. 추석 때 다 얘기했지. 옛날 얘기도 하고, 돈 얘기도 하고 그랬지. 그러고 집에 딱 도착했는데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와서 바로 다시 내려갔지.
할아버지는 뭔가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오셨나 보네. 아빠는 할아버지 간병하면서 후회되는 거 없었어? 못 다한 말이라던지…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때 폐암으로 3년 정도 투병 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항암 치료를 괜히 했지. 어차피 가망이 거의 없었는데. 다른 방법을 더 찾아봤어야 했나 싶기도 해. 더 힘들게 한 것 같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은 없다. 이 나이 되니 왜 그렇게 사셨는지 이제 다 이해한다.
그럼 아빠는 언제가 되면 죽을 때가 됐다고 생각할 것 같아?
어쩐지 여기까지 순순히 대답해 주던 아빠가 머위대를 벗기던 칼을 내쪽으로 돌리며 너 지금 뭐 하냐?라고 묻는다.
아니 나 지금 안락사 관련 책을 읽고 있는데 궁금해서.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가족하고 나눠보라고 해서 해보는 거야. 말해봐. 몸이 더 약해지면? 아니면 삶의 의미가 없으면? 어떨 때 삶의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지금 죽으면 후회되는 게 뭐야? 아직까지 아빠만 손자 없는 거? ㅎㅎ
아빠가 이제는 나를 정말 찌를 것 같아서 그만 묻기로 했다. 나는 종종 아빠와 죽는 날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는 스테파니 그린이라는 캐나다 최초의 합법적인 조력 사망 전문의가 일년 동안 조력 사망을 시행하며 겪은 일과 생각들을 정리한 책이다. 조력 사망은 아직까지 존엄사, 안락사, 조력 죽음, 의사 조력 자살 등으로 그 용어도 혼동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익숙하지는 않다. 저자는 조력 사망을 강하게 옹호하거나 주장하기 보다는 그녀가 조력 사망 전문의로 일하면서 겪게 된 다양한 일화들을 통해 조력 사망의 진정한 의미와 필요를 차분하고도 단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책에는 다양한 환자들의 케이스가 나온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임종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없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그 현장에 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때엔 나도 숨을 참게 되고, 어느 때엔 나도 같이 울었다. 사는 모양만큼이나 죽음의 모양도 각기 다르며 조력 사망을 받아들이는 당사자와 가족들의 모습도 전부 제각각인 것을 보며 삶이란 역시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10분이면 충분한 조력 사망이지만 받아들이는 과정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으니까. 또 임종의 순간에 초대될 때마다 나라면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죽는 날짜가 정해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같은 것들을 계속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의 또 다른 이야기 줄기는 스테파니가 조력 사망 케이스를 진행하면서 풀어가는 자신의 이야기이다. 출생을 담당하던 산부인과 의사가 죽음을 돕는 의사가 되는 과정, 담당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자신과, 자신의 부모, 가족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이야기, 아직은 낯설고 편견이 있는 분야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저 어떤 일을 진심으로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조력 사망이 행해지는 일련의 과정을 그녀가 신속하고 유능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볼 때는 약간의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그녀는 어떤 사람의 죽음은 돕지 못해 아쉬워하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완벽하게 처리해 내 만족감을 느낀다. 그녀의 말대로 이 일이 정말 고통을 줄여주는 일 인지 아니면 삶을 포기하는 일 인지 아직은 완전히 입장을 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아빠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생각은 하게 되었다. 이 일을 당장 할지 말지 지금 정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에게 이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겠다고. 우리의 아름다운 마지막 모양을 준비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죽음과 관련된 책은 요즘 유행하는 ‘회귀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언젠가는 어떤 모습으로 죽는다는 것을 문득 일깨워주니까. 책의 말미에 작가가 던진 물음처럼 이 책은 그러니 지금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하는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함께 나눌 추억이 무엇 일지를 지금 생각해 보자는 것 아닐까.
머위대나물 껍질을 다 벗긴 아빠는 야구장에 갈 채비를 했다. 60이 넘은 아빠는 아직 야구장에 한 번도 못 가봤다. 오늘 인생 첫 야구장에서 친구들과 술을 먹기로 했단다. 역시 아빠의 장기는 쓸모가 없어 보인다. 죽을 때가 되면 깔끔하게 죽어야 한다고 말했던 아빠는 오늘 무척 설레어 보였다. 아직 우리가 함께 할 일이, 만들 추억이 많~이 남아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