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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May 09. 2021

장례식장 가는 길

더 이상 죽음이 낯설지 않을 때


오래간만에 가까운 직장 동료들과 치맥 타임을 가지고 있던 저녁이었다. 친한 대학 동창 친구들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 한 친구가 어머니의 부고를 전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놀라고 당황했지만 길게 카톡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신이 없을 친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일 것 같았다. 빠르게 당사자를 제외하고 나까지 세 명의 다른 채팅방을 만들어 함께 장례식장에 가는 일정을 잡았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이 전하는 안타까운 소식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결혼식보다는 상갓집에 가는 빈도가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잦아졌다.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못 해도 분기에 한두 번씩은 꼬박꼬박 상갓집에 갈 일이 생긴다.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명징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몰랐던 일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다가, 이제는 피상적인 설명만 들어도 그 일이 가지는 의미를 짐작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친구 어머니의 소천은 개인적으로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되, 70대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갑자기 떠나는 일은 객관적으로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오랜 병치레와 수발로 당사자와 가족 모두 온갖 고생을 하며 정신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피폐해지는 것보다는, 냉정하게 말하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는 편이 어쩌면 서로에게 실질적인 도움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아버지를 하루아침에 떠나보낸 사람의 입장에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부모와 헤어지는 아픔이 무엇이며 얼마나 생생한 고통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앞으로 마음고생할 친구 생각에 마음이 심히 울적하였다.






매번 보자고 얘기만 하던 모임이 몇 개나 있다.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운 여러 모임은 결국 구성원 누구에게 상이 생겼을 때야 비로소 오랜만에 상갓집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게 된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 중년이 되어가는 나이의 무게는 결국 그런 것일까.



점심시간을 이용해 장례식장에 갔다. 오랜만에 본 친구 모습이 낯설기도 또 익숙하기도 했다. 원래 밝고 말을 잘하는 친구는 기운이 어디서 나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이런저런 얘기들을 이어갔다.



네 명의 친구들이 장례식장 식당에서 모여 한 시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20대 시절,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거의 처음 장례식장에 갔을 때는 상갓집에서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는 분위기가 참 낯설고 이상했는데, 어느새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헤어질 때 나눈 인사에 잠시 울컥하기는 했지만, 우린 또 이렇게 살아갈 것이고, 남은 시간을 더 열심히 보낼 것이라는 예감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나를 세상에 낳아주신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도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

여전히 지구는 돌아가고 배는 고프고 집안의 먼지는 쌓여간다는 것,

슬픔과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는 것,

또 그저 묵묵하게 삶을 이어가는 것이 남의 자의 몫이라는 것......



오랜 친구가 아픔을 천천히 떨치고 다시 마음의 평온을 찾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https://brunch.co.kr/@richlem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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