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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Feb 02. 2020

죽음에 대하여

장례를 치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의 친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어렸던 아주 옛날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나는 뵌 적이 없다. 외아들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친할머니를 평생 모셨고, 나는 죽음에 대해서 거의 경험하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었다.



외조부모님은 내가 삼십 대 초반일 때 90대의 나이로 소천하셨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결혼 전까지 한 집에서 살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는 마음이 많이 아팠고, 평생 친정에 계셨던 할머니가 안 계시다는 사실에 몇 달 동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 생에 가장 충격적인 죽음은 할머니가 떠나신 다음 해 가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었다. 할머니를 납골당에 모시고 나오며 아이처럼 엉엉 우시던 아빠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한데, 바로 그 자리에 다시 아빠를 모시게 되었다.



봄에 가족들과 모여 칠순 잔치를 하셨는데, 아프신 것도 아니었는데, 마지막 뵈었을 때 참 좋아 보였는데,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는데, 하루 아침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나도 모르게 떠오르면 멀쩡히 잘 지내다가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고 길을 걷다가 눈물이 났다.






장례를 한 번 치러보면 넋 놓고 무작정 슬퍼하는 일도 어른이 된 이상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선 영정에 놓을 고인의 사진과 액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 영정 사진이 없어서 애를 먹는 경우도 많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직장에 계시던 시절 찍어놓은 사진이 있어서 내가 친정에서 액자를 들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돈과 관련된 결정의 연속이다. 장지를 어디로 할 것인가, 수의와 관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하는 것은 약과이다. 납골함의 종류와 각각의 가격이 얼마인지 브리핑(?)을 듣고 정해야 하며, 조문을 오시는 손님들이 드실 음식의 종류를 결정하고, 접객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분량의 음식을 상주나 가족이 직접 주문해야 한다.



일반적인 장례식을 치르는데 생각보다 꽤 큰 비용이 들어가며,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전혀 모르던 세상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어머니가 다니시던 절에서 했던 아빠의 49재 때, 우리 가족은 다들 각자의 이유로 아주 많이 울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해서 기도와 절이 이어지는 내내 눈물만 나왔다. 기도를 해주시던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가족들이 슬프게 울면 망자가 이승을 떠나지 못합니다. 망자가 옆에 계셨더라면 자신 때문에 슬피 우는 모습에 너무나도 가슴 아파하실 것입니다. 망자는 가족들이 하루하루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랄 겁니다. 이제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리는 것이니 너무 슬피 울지 마십시오."



이후 죽음에 대한 글을 읽거나 이야기 중 나에게 가장 위안이 됐던 것은 '어떤 삶이라도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다'와 같은 내용이었다. '몇 년을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몇 년을 살더라도 그 삶은 온전한 것이었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할머니와 아빠의 납골당을 다니며 열살이 채 안된 남매의 유골함부터 스무살에 생을 마친 청춘, 나보다 젊은 아빠나 엄마들의 역사를 숱하게 지나치게 된다. 결국 누구나 한결같이 언젠가 죽음의 길에 들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빠 덕분에 세상을 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찾은 죽음의 의미이다. 나에게 안타까운 이별이라고 해서 아빠의 삶 자체가 안타까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남겨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렇게 이어지는 삶의 영속성에서 떠난 사람은 떠난 것이 아니다. 남은 사람인 내가 인생을 사는 동안 결국 아빠도 그 안에 영원히 함께 게시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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