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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Jan 12. 2020

딸에게 쓰는 편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에게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네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을 앞두고 있는 2020년 겨울은 아직까지 예년보다는 춥지 않은 것 같다. 엄마는 너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더운 것보다 추운 것을 싫어하고, 한겨울에도 집에서는 반팔을 즐겨 입던 사람이었거든.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된 요즘은 겨울이라고 하면 얼마나 추울까 벌써부터 싫어지기도 한단다.


나이가 들며 체질이 변하고 체력도 약해졌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엄마가 지금 보내고 있는 계절은 그동안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고 수확을 거두는 가을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싱거운 생각도 해 보았다.


가을은 풍성한 추석도 있고 오색찬란한 단풍도 아름다움을 뽐내는 인생의 전성기 같은 화려한 계절이지만,  다시 피어날 봄의 부활을 기다리며 이제 곧 모든 자연이 휴식이자 어쩌면 죽음일 수도 있는 겨울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엄마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어리석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서, 직접 경험해 보고 제대로 된 맛을 봐야 '사람들이 얘기했던 것이 이거였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는 일을 여러 번 겪어보았다. 그 맛은 가끔 씁쓸하고 고통스럽기도 했고 어쩌다가는 달콤하기도 했는데, 미리 어떤 맛인지는 절대 알 수 없어서 스스로 깨우치는 것 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네가 엄마 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엄마를 똑같이 닮지는 않았고 - 물론 그래서도 안되지만 - 당연하게도 엄마보다 현명한 어른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네 엄마여서가 아니라, 30년 먼저 인생을 산 선배의 입장에서 짧은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엄마도 이 나이가 돼서 겨우 깨우친 어떤 생각을 어린 네가 재빨리 알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야. 다만 글로 한 번 읽어본 것과 아예 접하지 않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으니 한 번 적어볼까 싶다.






1. 기준은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부모님 마음에 들까, 저렇게 하면 다른 친구들보다 더 잘할까, 와 같은 고민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단다.


물론 너는 아직 보호를 받아야 하는 미성년자이자 학생이기에 엄마와 아빠가 주는 가이드를 충실히 따르거나 또래 친구와의 바람직한 경쟁을 통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사계절을 사는 우리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는 결코 아니란다.


네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일을 하면 되는지,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일은 결국 오롯이 네 스스로 해야만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단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순간, 너는 진정한 어른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스스로 세운 기준을 따라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한 것들로 이루어지는 삶, 어른이 된 너는 그런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2.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지나가더라.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엄마가 오래 직장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되뇌고는 했던 아주 유명한 문장이다. 성경의 한 구절이라고도 하고 솔로몬 왕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말이라고도 한다.


살다 보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싶을 만큼 절망스럽고 힘든 일을 겪기도 하고,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을 만큼 행복한 경험을 너 또한 겪게 되겠지. 환희에 가득 찬 기쁨도, 고통스러운 낙담도 결국 다 지나갈 테니 '결국 모든 것이 다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 더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겠지?


그때의 순간에 충실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나의 성공과 즐거움에 지나치게 자만하지도 말고, 지금의 실패에 지나치게 기운을 잃지도 말자는 의미라고 엄마는 생각해. 


그러자면 내 안에 아주 탄탄한 자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자아라는 것은 청소년이 되는 네가 지금부터 정성껏 키워야 하는 너만의 정수이기도 하단다.



3. 간절히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고 노력해야 한다.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마침내 정해진다면, 그 길을 힘차게 달렸으면 좋겠다. 대충 노력하고 나는 할 만큼 다 했다고 위로하며 안주하지 말자. 남들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 정한 삶의 방향에 따라 힘차게 움직이는 가치 있는 삶을 살자.


세상을 살면서 가장 놀라운 것은 '시간이라는 마법'이 아닐까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데 어떻게 쓰느냐는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든 그건 각자의 자유의지이기에 다른 사람이 쉽게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소망을 따라가려고 우리는 시간이라는 마법을 사용하게 된다.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해답은 어쩌면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어서 발 밑에 있는데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실은 해답이 원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원하는 것이 있었고 진정으로 최선을 다했다'라고 그 길을 꿋꿋하게 걸어왔다는 그 자체일 뿐이야. 그 과정에서 엄마는 네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큰 희열과 네 안의 단단한 중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쓰고 보니 마치 대학생이나 성인이 되거나, 이제 사회에 진출하는 큰아이에게 쓰는 내용 같기도 해서 살짝 민망하구나. 너는 아주 어려서부터 생각이 깊고 엄마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 뜻을 먼저 헤아려주던 고마운 딸이기에 엄마가 너를 아주 큰 아이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나 보다.



언제나 너를 믿고 응원한다. 네가 초코파이로 마카롱을 만든다고 해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할게. 새롭게 시작하는 중학교 생활이 네가 보내고 있는 인생의 봄에서 찬란한 시절로 기억되길, 가을의 엄마가 기도하고 든든하게 지지할 것을 약속한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언제라도 서로 믿고 의지하며 얘기를 나누자꾸나.



-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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