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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Apr 18. 2021

열두 살 아들, 이랑이

다가오는 아들의 생일을 앞두고


올해 열다섯 살인 딸과 열두 살인 아들, 세 살 터울의 남매를 키우고 있다.



딸은 나를 닮아서인지 성별의 특성에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주변을 살피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어른들의 기분이나 지금의 상황을 잘 알아차렸고, 그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나 할까.



대화가 잘 통하는 딸을 키우다가 전혀 다른 성향의 아들을 키우는 것은, 나에게는 첫 육아와 다름없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내 얘기를 아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또는 이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랑이가 불과 서너 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기 전의 나는 부모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독서와 공부를 강요하는 일은 엄청난 모순이며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일상에서 책을 접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이 아니냐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고 나서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통제 불능으로 장난을 치거나, 떼를 쓰다가 바닥에 드러눕는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며 부모의 교육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모두 전혀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전적으로 맞는 말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아들을 키우면서 깨달았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집에서 늘 책을 보는 편인데 - 물론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더 많이 들여봤던 것이 맞기에 조금 반성한다 - 우리 랑이는 책이라면 어릴 때부터 지금도 딱 질색이다. (물론 딸은 책을 좋아한다) 부모가 책을 좋아한다고 아이도 책을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상관관계가 아니었다.



말로 잘 구슬리으고 달래고 어르고, 때로는 혼내면서 밖에서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아이도 있지만(물론 딸은 영아 시절 이후에는 밖에서 말썽이라는 것을 일으킨 적이 없다), 반면에 부모가 어떻게 하더라도 통제가 어려운 순간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아들을 키우면서 깨닫게 된 셈이다.



랑이는 엄청난 말썽꾸러기는 아니지만 언제나 장난을 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생각과 의사가 우선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신보다 앞서서 고려할 여유는 없다. 점점 자라면서 사회성이 주입되어(?) 이제야 비로소 어디를 가더라도 걱정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엄마 입장에서 뭔가 아들 흉만 적어놓은 것 같은데 그렇진 않다. 랑이는 엄마로서 또 어른으로서 상당히 흥미가 가는 관찰 대상이자 나와는 너무 달라 늘 궁금한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숫자를 좋아하고 수학을 잘한다. 좋아하는 음식을 주면 소리를 내면서 아주 맛있게 먹는다. 유치하고 어이없는 무언가를 너무 재미있다고 즐거워한다. 씻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참으로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떨 때 보면 또 심오한 면이 있다.



항상 또래보다 조금 늦게 유행을 타는 편이다. 터닝메카드, 쿠키런 등등 모든 장난감과 아이템이 그러했다. 한 가지에 꽂히면 무섭게 몰입한다. 코로나로 학교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최근에는 종이접기에 꽂혔다. 몇 시간이고 유튜브를 보면서 끈기 있게 작품(?)을 만들어 낸다.




자체 직립이 가능한 멋진 색종이 로봇



한 달 전쯤 찍은 사진인데 지금은 이보다 두 배의 로봇이 있다.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하면 돈을 모아서 독립할 것이라고 한다. 혼자 살면서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울 예정인데 하얀 솜뭉치 같은 포메라니안 한 마리와 역시 흰색 말티즈를 키우고 싶다나. (아직도 개를 조금 무서워하면서 어떻게 키우겠다는 것인지......)






꽃구경을 가자는 엄마에게 대체 꽃을 왜 보냐는 'No 갬성'의 아들이지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들이 있다. 4월 말, 다가오는 자신의 생일을 기다리며 아들은 매일 날짜를 카운트 다운하고 있다.



생일이면 대체 뭐가 좋은 거냐는 질문에 "생일 케이크를 먹을 수 있잖아. 생일 선물도 받고."라는 아주 심플한 답변을 건네는 열두 살 이랑이. 생일 특식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도 매일 키가 조금씩 자라고, 불과 몇 년 안에 나보다 더 큰 키로 세상에 뚜벅뚜벅 나아갈 우리 아들.

다가오는 생일을 누구보다 축하한다.

네가 있어 매일 웃을 수 있고 가끔 화도 내고(...)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면서 엄마는 살아간다.



먼저 다가와서 껴안고 배꼽만지, 킁킁 냄새맡으며 부비부비 하는 다정한 아들, 엄마로서의 행복에 겨운 날들은 대체 얼마나 남았을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라는 질문에 "니니(no no)~"라며 답변을 피하다가,

시인이나 작가는 어때?라는 질문에 절대 싫다는 랑이.

그럼 평론가는 어떨까?"라고 넌지시 운을 띄웠는데, 바로 나오는 아들의 답변.



"평론가가 뭐야?"




https://brunch.co.kr/@richlemo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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