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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Apr 06. 2021

꽃 보러 갈래?

봄, 꽃, 그리고 우리의 하루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나를 위한 꽃'을 사서 스스로에게 선물하였다. 축하할 만한 특별한 이벤트가 있던 것은 아니고, 꽃이 너무 예뻐서 계획에 없이 선뜻 지갑이 열린 충동구매는 더욱이 아니었다. 장시간 고민하고 신중하게 결정한 일이었다.



단돈 만원 하는 작은 꽃다발 하나였지만 그 구매 행위가 상징하는 의미는 작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 돈을 써야만 하는 '필수적 소비'가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내 눈의 즐거움과 마음의 기쁨을 위해 약간의 돈을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되도록 절약하고 살자는 마음가짐으로 몇 해째 살고 있다. 나를 위한 꽃을 사기까지 어찌나 고민했는지 스마트폰을 들여볼 때마다 딸아이가 놀리곤 했다. "엄마, 또 꽃 정기구독 구경하는 거지?" "엄마, 이번엔 진짜 살 거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꽃으로 해 놓으면 중년의 나이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더 이상 내가 꽃이 아니기에 중년에 접어들면 더욱 꽃을 좋아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통계 표본의 오류일까. 나이가 들수록 꽃을 포함한 자연을 점점 좋아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기는 하다.



꽃 프사에 대한 선입견(?)에 일견 공감하면서도, 원래부터 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중 하나가 바로 나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선입견에 대한 이런 단순하고 유치한 반발(?) 심리야말로 바로 중년의 증거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꽃을 좋아했던 1인으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3월 초중순부터 서서히 피다가 3월 말쯤에는 목련이 탐스럽게 핀다. 4월이 되면 봄꽃의 여왕, 벚꽃이 개화하기 시작해서 2-3주 차쯤에 절정에 다다른다.



곧 깨어날 대지를 적시는 촉촉한 봄비가 두어 번 내리면 새하얀 혹은 옅은 핑크색을 머금은 벚꽃잎들이 낱낱이 떨어져 바닥을 화사하게 장식한다. 마치 벚꽃과 교대하는 것처럼 진분홍이나 붉은색의 철쭉이 화사하게 피는 것은 4월 중순부터 5월 초 무렵이다.



2021년, 올해는 백 년 만에 서울에서 가장 이르게 벚꽃이 피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역마다 동네마다 꽃이 피는 순서가 어쩐지 뒤죽박죽으로 보인다.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함께 피어있기도 하고, 이미 벚꽃이 졌는데 목련이 만개해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매년 봄마다 하던 꽃구경은 즐겁다. 예전처럼 요란하게 날 잡고 가서 가져온 먹거리를 먹거나 사진을 찍지는 못하지만, 그저 천천히 거닐며 꽃나무들의 개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자 위안이 된다.








코로나 시국이라 알려진 벚꽃 명소에 가지는 않지만, 왕년에 꽃구경을 즐기던 버릇을 저버릴 수는 없다. 지난 주말, 비도 왔고 이제 빨리 피어버린 꽃들이 다 떨어질 것 같아 가족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엄마랑 꽃 보러 가지 않을래?"



딸은 "난 꽃보는 거 싫어."라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했고, 아들은 "꽃을 왜 봐야 해?"라고 정말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어보았다. 물론 나는 대답할 말을 잊었다......



꽃을 보며 정답게 산책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 것은, 엄마인 나의 로망일 뿐이었나 보다. 아이들이 더 어렸던 시절에 해본 일이긴 하니, 이제 그런 소망은 고이 접어야 할까 보다.



굳이 꽃놀이를 나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주말에 두 시간 소요의 산책을 하는 루틴대로 나는 배우자와 함께 동네 꽃구경을 잘하고 왔다.






나를 위한 작은 꽃다발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들이고 나니 볼 때마다 행복해져서, 과감하게 6개월 정기구독을 결제한 덕분이다. 꽃과 함께 하는 소박하지만 화사한 삶, 내가 가진 작은 것에 기뻐하는 하루를 천천히 그린다.



매일 맞닥뜨리는 오늘 하루가 똑같이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살아있어 다행이다.

꽃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https://brunch.co.kr/@richlemon/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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