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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May 30. 2021

어느 일요일

출근을 준비하며


분주한 토요일을 보냈다. 잠들 때는 피곤한 몸을 누이며 늦잠까지 푹 잘 수 있기를 바랐지만 자신은 없었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아직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았다.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해 보았지만 정신은 이미 시동이 걸린 뒤였다. 복잡한 머릿속 생각이 하나둘씩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결국은 머리맡에 있던 스마트폰을 켜고 루틴대로 살펴보았다. 더 이상 확인할 것이 없어졌을 때, 다시 폰을 놓고 잠을 자려했지만 역시 불가능했다.



이렇게 누워 있기보다는 뭐라도 하며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일어나기로 했다. 여섯 시간 정도 잔 것 같은데, 그나마 최근 나흘간 가장 많이 자고 일어난 아침이었다.






골치 아픈 회사일이 생겼다. 20년 가까워지는 사회생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일은 시간이 지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문제는 뾰족한 정답이 없어 언제나 어렵다.



일이 많은 것은 시간과 노력을 더 들여 어떻게든 하겠는데, 사람에 대한 이슈는 그렇지 않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없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가장 고난도의 문제일 것이다.



잡으려고 할수록 자꾸 달아나버리는 신기루 같은 그래서 더 달콤할 것 같은 잠을 쫓다가 포기하고, 나는 내내 해결 방안에 대해 생각했다. 여러 각도로 검토하며 시나리오를 짜고, 몇 가지의 대안을 고민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어느 정도 가닥은 잡힌 듯했다. 더 이상의 고민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식구들이 아직 자고 있는 조용한 아침에 단순한 일을 하며 머리를 비워내고 싶었다.






식기세척기를 열고 지난밤 설거지가 끝난 그릇들을 정리하였다. 주방 베란다 분리수거함에는 며칠 동안 쌓인 쓰레기가 그득했다. 아침을 준비하려 해도, 그 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할 정도였다.



옷을 갈아입고 반팔 차림으로 분리수거를 하러 다녀왔다. 나가기 전 날씨를 확인했을 때 14도였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올해 5월은 어찌나 날씨가 좋지 않은지 아쉬울 뿐이다. 일교차가 큰 것은 그렇다 치고, 비가 몰아치는 날이 너무 많았다.



주말 아침에는 샌드위치나 와플을 먹는 것이 아이들의 희망 사항이다. 냉동실에 있던 식빵을 꺼내 두고 잠시 책을 읽다가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블루베리를 씻고, 샌드위치 네 개를 만들고, 꿀을 넣은 딸기와 우유를 갈아 딸기우유를 만들었다.





딸기우유 한 컵을 원샷하고 세수와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일요일 오전에 한의원 진료를 예약해 둔 터였다. 부스스 일어난 랑이와 남편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는 음식물 쓰레기 두 봉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 쓰레기가 쌓이면 못 견디는 것은 우리 집에서 나뿐이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물리치료를 하고 침을 맞고, 우두득하고 뼈 맞추는 소리가 나는 추나치료까지 끝내는데 한 시간 넘게 걸린 것 같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오랜만에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나는 평소 자주 안부를 묻는 다정한 성격이 아닌지라 누군가에 전화하는 일은 아직도 하나의 큰 미션으로 느껴진다.



십분 이상의 기록적인 긴 전화가 이어지며 집 앞에 거의 당도한지라, 근처 길을 서성이며 통화했다. 마침 아파트 단지 내 길의 담벼락에는 붉은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왜 때문일까.





남편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부탁하고 남은 샌드위치와 함께 먹는다. 랑이와 함께 '나혼자산다' 재방을 보고, 다시 점심을 준비한다. 돌밥돌밥이라고, 식사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다가오는지.



냉장고 식재료가 이것저것 많아 빠른 소진이 필요할 것 같다. 달걀토마토볶음을 하고 햄을 구워 점심을 차린다.



이제 남은 집안일은 거실과 방,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고 빨래도 돌려야 한다. 늦은 오후에는 두 시간가량의 산책을 다녀올 것이고, 해가 저물면 또 저녁을 차리고 먹고 잠이 들어야겠지.






평범한 하루지만 비장한 각오로 월요일을 준비한다. 계획한 대로 풀리는 한 주가 되길 소망한다.



완생을 꿈꾸는 미생은 오늘도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원치 않게 눈을 뜨겠지만,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https://brunch.co.kr/@richlemon/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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