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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Dec 12. 2021

꼰대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후배의 결혼을 지켜보며


나는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가까워지는 40대 중반의 직장인이다. 지금 회사를 다닌 지는 10년이 좀 넘었고, 연차가 높아지면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옆 팀 후배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들었다'라고 적는 이유는 말 그대로 제삼자를 통해 듣기만 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준비한다는 것도, 결혼식을 했다는 것도, 모든 과정을 다른 본부원들을 통해 듣기만 했다.



같은 팀도 아니고, 그 후배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도 아니기에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그 과정에서 문득 느껴지는 바가 있어 글로 남겨본다.






지금 직장에서의 암묵적인 관례상, 결혼을 하는 본부원들은 보통 같은 본부 사람들에게 (형식적이나마) 청첩장을 돌리고 결혼 소식을 알린다. 소속 팀의 다른 팀원이, 결혼하는 팀원의 청첩장을 회사 인트라넷에 게시해서 전사에 알린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결혼하는 당사자와  친하거나 가까운 직원들은 알아서 결혼을 챙긴다. 결혼식에 직접 참석하거나 축하의 마음을 담은 봉투를 전달할 것이다. 결혼식을 다녀온 직원은 (역시 형식적으로나마) 본부원들에게 작은 답례품을 돌리며 감사 인사를 한다.



만약 다른 본부인데 비교적 친한 사이라 결혼을 챙겼다면? 그럴 경우엔 보통 결혼을 챙겨준 타 본부 직원에게만 답례 인사를 하는 것을 종종 목격하였다. (내가 일하는 본부는 몇십 명, 회사 전체는 몇 백 명 규모의 인원)



*여기서 우리나라 결혼 풍습의 옳고 그름은 논외로 한다.






출처: Pixa Bay



이번에 결혼한 후배는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뿐더러, 기본적으로 조용한 성격으로 보인다. 게다가 입사 이후 본격적인 코로나 시국으로 타 팀원들과 친하게 지낼 기회도 비교적 적었다. 그 후배의 상황에서 결혼 소식을 일일이 알리지 않은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하 A라 지칭)



돌이켜 보면 오래전 나도 결혼할 때, 괜히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 나름대로는 배려해야겠다고 회사 직원들 중 일부 친한 이들에게만 청첩장을 돌렸다. 나중에 보니 청첩장을 주지 않았는데 축의금을 보낸 직원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민망함을 무릅쓰고 나중에 쭈뼛쭈뼛 고맙다는 인사라도 했던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주변머리 없는 성격이라 아마 못했지 싶다.



암튼 몇 날 며칠, A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날짜가 임박했는데 청첩장을 돌리거나 따로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약간 의아했고, 축의금을 보내야 하나 살짝 고민을 했다. A와 나는 까마득한 나이와 직장 연차의 차이는 물론, 다른 팀이기에 가깝거나 친한 사이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후배라는 것, 언젠가 내가 A의 팀장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 이제껏 본부원들이 결혼할 때 축의금을 보내지 않은 전례가 없는 점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나는 A의 팀장에게 축의금 봉투를 건넸다.



그러고 보니 A가 입사했을 때 밥이라도 한 번 같이 먹고 싶어서 A와 A의 선임과 함께 점심 자리를 마련한 적도 있었고, 종종 A에게 내가 궁금한 질문을 했던 것도 함께 떠올랐다.






A의 팀장에게 듣자 하니 A는 코로나 시국인 점을 고려해서 소수 인원만 참석하는, 5성급 호텔에서의 스몰 웨딩을 치렀다 한다. 어차피 회사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는데(팀장과 가까운 직원 서넛만 참석했다고) 괜히 사람들에게 부담만 줄 것 같아 아예 청첩장을 돌리지 않은 것이라고.



결혼했다는 A와 화장실에서 단둘이 마주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은 것도, 청첩장을 돌리지 않은 것도 다 이해하겠지만, 축의금을 보낸 상사에게 (역시 형식적으로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마주치고도 아무 인사를 건네지 않는 후배 앞에서, 앞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A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내가 먼저 결혼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A는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다. 어찌 보면 나의 축하도 A의 감사도 다분히 형식적이었다.



결혼의 과정에서   번이라도 일종의 인삿말을 표현하길 내심 기대한 것이, 내가 꼰대란 증거인가?   아닌 일인데 며칠 동안 은근히 마음이 쓰였다.






이 생각을 완전히 털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나보다 선임인 다른 팀장님과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우연히 A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하니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축하해줘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건,

축하하지 않았어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인 것 같아.

우리가 그런 친구들에게 그렇게 의미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지.

괜히 혼자 챙겨준다고 축의금 보냈다가 인사를 못 들어 서운한 거라면,

차라리 챙기지 않고 마상(마음의 상처)도 입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그 말을 듣고 또 하나의 유레카를 찾은 것 같았다. 결국 이 또한 나의 편협한 사고 때문인 것이다. 굳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축하까지 필요 없으니 결혼을 알리지도 않은 것뿐인데, 꾸역꾸역 축하를 하겠다고 그 소식을 챙겨 봉투를 전한 것이나, 그 후에도 아무 인사가 없다고 못내 서운해했던 것이나, 다 내가 어리석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A가,

그렇게 행동할 필요가 없지 않나 싶은 사람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꼰대냐 아니냐가 아니라 (사실 이미 뼛속까지 꼰대일 것이다 ㅜㅜ)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생각 아래, 방향이 전혀 다른 행동과 사고를 나도 모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그걸 모른다는면 그야말로 레알 슈퍼 꼰대가 되어갈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은 이래서 더욱 어려운가 보다. 어쩔 수 없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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