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다 내 딸들!
오늘 우마무스메 챔피언스 미팅(이하 챔미) 제미니배가 종료되었다. 거리가 3200m나 되는 만큼 운보다는 능력으로 판가름 나는 대회였다. 그래서 육성마의 고점을 최대한 깎아야 하는데, 스피드/스태미나/파워를 모두 챙기는 동시에 거리 인자와 각종 스킬들을 계승받아야 고점이 찍힌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전 대회였던 타우러스배 때보다 육성 수가 압도적이었고 그만큼 눈물을 많이 흘렸다.
URA와 함께 스킬 계승을 잘 받아서 스텟이 잘 찍혔다 하면 귀신같이 거리 인자가 붙질 않고, 반대로 클래식 4월 때부터 거리 인자가 붙어 싱글벙글하고 있으면 스텟이 안 찍히고. 나를 만족시킬만한 육성마는 없었고, 제미니배가 시작하기 전까지 그래도 최대한 잘 깎은 애들을 선별하였다. 그리고 B그룹 결승만 진출하면 좋겠다는 불안함을 안은 채 제미니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막상 출전하고 보니 승률이 꽤나 나오던 것이 아닌가? 심지어 타이신과 골드쉽은 타우러스배 때 육성마들보다 더 안정적이었다. A그룹 결승도 꽤나 쉽게 올라갔다. 이때부터 제미니배 우승하는 게 아닐까라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헤비유저들보다 스텟이 부족하지만 충분히 칼찌할 가능성이 있었다. 오늘 결승전이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벌써 제미니배 유관이었다.
큰 기대를 품고 결승전을 시작하였다.
결승전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도주 하루 우라라였다. 선행을 죽이고자 하는 전략이었다. 심지어 하루 우라라는 능력치도 낮아 포지션을 다 망가뜨리기 때문에 종반 시작하자마자 1등을 먹는 말이 끝까지 1등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즉, 운빨의 영역이 되었다. 우연찮게 종반 진입하자마자 1등이면 나는 제미니배 유관이 되는 것이다.
유관의 기분은 어떨까? 유관하기 위해 왜 핵과금을 하는 거지? 그냥 나처럼 똑똑하게 하면 되는데? 우마무스메 시스템을 다 파악해버려서 쉬워지면 어떡하지? 내가 다른 사람들 가르쳐줘야 하나? 공략 글을 써야 하나?
별에 별 생각이 다 들면서 나는 한 마디를 외치며 게임을 시작했다.
아! 진짜 한 명만 제대로 된 출발이나 제대로 된 경기를 펼쳤다면 유관이었을 텐데! 안 그래도 스테미너가 중요한 경기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결국 나는 무관으로 제미니배를 마무리하였다.
나는 유관의 기분도 모르고, 역시 핵과금들이 유관을 하고, 나는 멍청했고, 우마무스메 시스템은 운빨이었고, 깨우쳐지는 건 나였으며, 현재 후기글을 작성하고 있다.
유관님들은 도대체 무관이 무슨 글을 쓸 자격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제미니배에서 배운 점이 딱 하나 있었다. 내 만족 기준을 남에게 두는 경험을 해본 것이다. 사실 준비하는 동안 이번에 출전시킨 말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보다 더 잘 깎은 사람들을 보며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심지어는 누가 봐도 굉장히 잘 깎은 말인데 "이거 우승할 수 있나요? ㅠㅠ"라고 올리는 글을 보면서 샷건을 쳤다.
왜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며 어쩔 수 없이 출전한 말들이 내 생각보다 굉장히 잘해주었다는 것이다.
우마무스메뿐만 아니라 현실도 그런 것 같다. 살아가는 동안 열심히 준비하고 완성해야 할 무언가가 많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없기에 분명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결과물이 허접하다? 그런 것은 또 아니다. 나름 괜찮은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렇듯이, 만족 기준을 남에게 두는 순간 내 결과물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혀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여러 미디어를 통해 뇌에 박혀버렸기 때문에 웬만하면 만족 기준을 내부에 둔다.
그런데 우마무스메에서는 왜 만족 기준이 남에게 있었을까? 잘 모르지만 나름 합당한 이유를 찾자면, 우마무스메는 비교할 대상이 바로 눈에 보이고 너무 많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남과 자꾸 비교하면서 게임을 진행했던 것 같다. 사실 유관/무관도 남과의 비교로부터 나오는 우월감/열등감이다. 만족 기준이 나 자신에게 있다면 유관/무관은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 있다. 내가 언제 행복할 것이냐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이번 제미니배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다시금 인식할 수 있었다.
글을 작성하면서 깨우쳐 버렸는데 그냥 나는 유관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여기서 행복하려면 1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에 올라서려면 당연히 만족 기준이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다. 사실 제미니배의 진짜 교훈은 "남들보다 잘하는 법"을 체험한 것이다. 솔직히 살아가면서 내가 1등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반드시 올 것이다. 내가 해야 했던 일들은 웬만하면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기에 아직 남들을 이겨야 하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 이번 제미니배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이다.
누군가 위에 올라선다는 것은 미칠 듯한 스트레스와 고통이 따른다.
스트레스와 고통을 이겨낸다면, 나만이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제미니배를 통해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경험을 통해, 누군가와 경쟁이 필연적일 때 이에 따라오는 보상을 잘 생각해보아야 함을 알 수 있었다. 고통을 감내할 만큼의 보상이라면 나는 진행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만족 기준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챔미는 캔서배다. 제미니배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다시 이겨낼 수 있을까? 나는 이겨내야만 한다. 아직까지 무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