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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린레이 Oct 13. 2024

일본 오타쿠와 진배없는 오사카 여행기 (1)

교토 시내: 교토 청수사~후시미이나리 신사 (여우 신사)

일본 오타쿠와 진배없는 오사카 여행기 (1) 교토 시내: 교토 청수사~후시미이나리 신사 (여우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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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다시 찾은 오사카. 돈이 없어 가난한 여행을 최고의 여행이라 치부하며 오사카 와서 일본 컵라면만 처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내가 8년 만에 다시 오사카를 찾았다. 이제는 어엿하게 돈을 벌고 취미가 생겼다. 남들은 가지 않는 홍대병이 생겼다. 그래서 이번 오사카 여행은 달랐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오타쿠 일명 씹덕이었다. 디지털로만 보던걸 실제로 보고 만져보고 구매하는 것, 그리고 맛난 거랑 같이 생맥주 무한으로 갈기기. 


첫 번째는 교토 시내 편이다. 사실 교토 시내는 오타쿠와는 거리가 조금 멀긴 하다. 교토경마장 들리기 전 들리는 장소여서 많이 돌아다니는 못했지만 날씨가 좋고 거리가 예뻐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번에는 청수사와 후시미이나리 신사 밖에 들리지 못했지만 둘의 여유로운 경험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음에 교토를 오게 된다면 반드시 금각사와 은각사를 보고 철학자의 거리를 걸어보려고 한다. 


교토 청수사

내 사진은 안 예쁘게 나오고 친구 사진은 예쁘게 나와 훔쳐왔다


교토의 첫 목적지는 청수사였다. 청수사로 향하다 보면 일본에 왔음을 실감할만한 풍경들이 쫙 깔려있다. 특히 높이 솟아오른 표지판에 세로쓰기가 되어있는 모습을 보면 일본 특유의 향이 진하게 났다. 또 교토에서 유카타(혹은 기모노)를 입고 돌아다니는 현지인과 외지인들이 일본풍 배경과 잘 어우러져,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던 가을축제에 온 것만 같았다. 


아, 나도 여자친구와 함께 유카타를 입고 교토 거리를 걸으며 알록달록 동전 주머니를 탁 하고 열어 500엔을 꺼내 말차 아이스크림을 노나 먹고 싶어라!



청수사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니넨자카를 지나야 한다. 니넨자카의 특징은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다는 것이다. 보통 그런 골목길을 들어가면 답답하고 불쾌한 느낌이 드는데 니넨자카는 그렇지 않았다. 


왜 그럴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높은 곳을 좋아하고 그래서 자꾸만 올려다본다고 한다. 보통의 골목길이라면 내가 아무리 고개를 쳐들어도 양 옆이 꽉꽉 막혀있어 시야에 들어오는 하늘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원하는 높은 곳은 꽉 막힌 곳이 아니기 때문에 실망하고 앞을 쳐다본다. 그런데 내가 나아갈 길조차 꺾여져 막혀있다. 그래서 답답하고 불쾌했었다.


니넨자카는 그렇지 않았다. 낮은 건물 덕에 하늘은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 벌써 후련하다. 구불거리는 골목은 더 이상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닌 아름다운 곡선으로 하늘을 감싸고 있는 날개 옷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도 그 자태를 감출 수가 없더라. 모두 니넨자카를 걸으며 연속촬영 모드로 걸으면서 촤라락 찍어보자. 당장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고 싶을 것이다.


Sandal Wood 향이다. 한번씩 쓱 맡았을 때 무조건 요놈이다 싶었다.

https://maps.app.goo.gl/pmR8fTFAY8Waf2maA

니넨자카에 오면 Koju(코쥬?)라는 무려 1575년도에 설립된 브랜드가 길목에 있다. 여자친구가 인센스 스틱을 좋아하고 직접 피우기도 해서 하나 사주려고 들린 곳이다. 하나씩 맡아볼 수 있게 되어있길래 한 바퀴 슥 둘러보았는데 Sandal Wood를 머금은 스틱이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산뜻한 향으로 나를 꼬시더라. 참을 수 없어 바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여자친구의 평가는 ... 베스트였다.


인파가 미쳐버린 산넨자카


더 나아가다 보면 계단이 까꿍하고 나를 반기는데 이곳의 이름은 산넨자카라고 한다.


사실 니넨자카와 산넨자카의 이름은 각각 2년 고개와 3년 고개라고 한다. 나무위키로 속성 훈련된 임시 가이드 친구가 알려줬다. 이 고개에서 구르면 2년 혹은 3년 안에 죽는다는데 니넨자카는 모르겠고 산넨자카에서 구르면 즉사 혹은 최소 중상이다. 이름 한 번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뭐, 그만큼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뜻이란다. 


근데 더 재밌는 사실이 있었다.


산넨자카 입구에서 진시황이 병마용 흙바닥에서 벌떡 일어나서 토용들을 헤집고 나와 헐레벌떡 교토로 넘어와서 '코레 이쿠라데스까'를 연신 외쳐댈 법한 물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1회 사망 보호권인 호리병이다. 호리병을 사면 고개에서 굴러도 죽는 걸 면제해준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순간 혹시 모를 걱정과 불안감에 주머니 속 꼬깃꼬깃 들어간 천 엔을 꺼내야 할 것만 같았다. 호리병을 이리저리 만지작해본 후 안에 모래가 없어 모래의 갑옷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다시 내려두었다.



청수사 입구에 다다르면 홍옥색의 신사가 우리를 반겨준다. 날씨가 맑아 더 보기 좋더라. 참고로 왼쪽 사진에서 사진촬영 금지 표시가 있는데 특정 시간대에 사진 찍지 말라는 거다. 불법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니다.



청수사의 이 모습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더라. 그도 그럴게 애니메이션에서 수학여행 편이 있다면 꼭 이런 형태의 난간에서 학생들과 함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가이드 누님이 서 있는데, 가이드 누님의 말은 개무시하고 자기들끼리 떠들다가 누님이 축 쳐져 누군가 위로해 주는 모습을 늘 보았던 것 같다.



내려가면서 석양이 지길래 또 한 컷 찍어봤다.


사람이 많아 좀 힘들지만 니넨자카에서 쇼핑하고 산책로 느낌으로다가 청수사를 들리면 교토 반나절 일정으로 뚝딱이다.




후시미이나리 신사 (여우 신사)


여기부터는 혼자 다녔다. 싸운 건 아니고 교토경마장을 가고 싶었는데 나 밖에 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토경마장을 들리기 전 후시미이나리 신사, 일명 여우 신사를 들렸다. 나는 여우 신사 다음 교토경마장을 들리고 오사카로 넘어가는 일정이다. 그래서 캐리어를 끌고 있었고 짐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코인라커를 이용하기 위해 전날부터 동전을 열심히 모아 왔다. 근데 미친 코인라커가 500엔은 안 먹고 100엔만 먹는 게 아닌가? 전날에 두뇌 풀가동해서 500엔 1개와 100엔 4개를 남겨 400엔 라커던 600엔이던 800엔이던 어떤 라커도 나를 막을 수 없게 준비해두었는데, 500엔이 안 들어갈 줄이야. 생각해 보면 500엔이 들어갈 거라고 생각한 나도 웃긴 놈이다. 이래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놈들이 정말 무서운 법이다. 이경규 형님 1승 또 적립하셨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며 해결방법이 정녕 없는 건가라고 생각하던 찰나 전기가 파밧 하고 지나가며 머릿속에 떠오른 해답 한 가지.


캐리어 끌고 여우 신사 등반하기


진짜 지금 생각하면 미친놈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발상이었다. 여우 신사가 어떻게 생겼냐면 ...


계단 퍼레이드 여우 신사


여기를 캐리어 끌고 올라가겠다고 한 거다. 최근 아쉬탕가 요가로 단련된 몸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진짜 무식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캐리어 끌고 여우 신사 여행하는 꿀팁 하나 주겠다. 여우 신사 쪽으로 걷다 보면 임시 짐 보관소가 나온다. 그냥 여기에 짐 맡기면 된다.


여우 신사 올라가기 전 오후 5시까지 맡아주는 짐 보관소가 있다.


나는 무식하지 않았다. 다만 짐 보관소의 존재를 몰랐을 뿐. 전날 대가리 굴려 남겨놨던 500엔은 여기서 홀라당 써버렸다. 모두 여우 신사에 오면 코인라커를 쓰지 말고 짐 보관소를 쓰도록 하자.



여우 신사를 산책하면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보았던 광경을 실제로 볼 수 있다. 햇빛이 쨍쨍해 걷기 힘들 줄 알았는데 붉은 전통문인 도리이 덕분에 그늘이 만들어져 쾌적하게 걸을 수 있었다. 끝까지 올라갔다 오면 3시간쯤 걸린다고 적혀있는데 나는 몸이 허약해 왕복 1시간 정도로 산책했다.


멧짜 우메


하산하고 나서 교토경마장 가기 전 라멘집을 들렸다. 구글 평점이 괜찮아 보이는 라멘 집에 들어서자마자 바테이블에서 동네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싶으셨는지 젓가락을 톡 뜯으면서 천천히 라멘에 입을 갖다 대는 모습을 보고 '이 가게 맛있구나'를 연신 마음속으로 외쳐댔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한 후, 그 할아버지 왼편으로 자리를 안내해 주더라. 할아버지는 국물에 면을 올려 호로록 먹을 때마다 으-음하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내 왼편에는 중학생처럼 보이는 2명이 앉아 있었는데 폰으로 하스스톤 같은 카드게임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2명 중 한 명의 라멘이 먼저 도착했다. 일본어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나조차도 학생들의 제스처와 표정 어투를 보면 자연스레 통역이 되었는데, 자기 먼저 먹는다고 말하며 라멘을 후루룩 들이키더라. 그리고 하는 말 ... 


멧짜 우메! 


가게는 당첨이었다.


자, 이제 교토경마장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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