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킹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공허한 시간들
연말이면 어김없이 모임 제안이 쏟아진다. “연말인데 한 번 보자”는 연락에 당신은 이유 없는 피로를 느낀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는 늘 “네트워킹”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 말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상하게도 대화는 얕아지고, 사람은 더 피곤해진다.
대화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 문제를 걱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어느새 자신이 얼마나 깨어 있는 사람인지 증명하려는 이야기들.
힘들었던 경험을 꺼내는 듯하다가 결국은 교묘하게 자신의 성취와 인맥을 드러내는 말들.
연말 일정이 얼마나 빽빽한지를 강조하며 바쁘게 산다는 사실 자체를 능력처럼 포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소소한 일상을 반복해서 공유하면서 그 평범한 대화 위에 ‘네트워킹’이라는 이름만 붙이는 경우도 많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사람은 많은데, 대화는 남지 않는다.
웃고 있는데, 에너지는 빠져나간다.
그래서 그런 모임이 피곤해졌다면 그건 당신이 사회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건 당신이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알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그런 자리가 유독 피곤한 이유는 당신이 상대의 마음을 너무 빨리 읽어버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보다 왜 그 말을 하는지를 먼저 알아차리고, 대화 속에 숨겨진 의도와 감정을 자연스럽게 포착해버린다.
누가 누구를 의식하는지, 어떤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 그 미묘한 흐름이 눈에 보인다.
그 과정에서 뇌는 쉬지 않는다.
계속 해석하고, 추론하고, 정리한다.
김경일 교수는 이런 상태를 인지 과부하라고 설명한다. 정보 자체가 많아서가 아니라, 의미를 읽어내는 과정이 과도할 때 사람은 빠르게 피로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여러 사람과 겉도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보다 차라리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그건 회피가 아니라 뇌가 쉬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이유,
당신은 얇은 관계보다 관계의 깊이를 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과 두루두루 아는 것보다 단 한 사람과라도 의미 있고 도움이 되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 그래서 소소한 안부와 형식적인 공감이 반복되는 대화에 쉽게 피로를 느낀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이렇게 말했다. "지적인 사람은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은 혼자 있으면 견딜 수 없어한다."
무엇보다 당신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모임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 경조사를 챙기고, 약속을 잡고, 장소와 분위기를 고려해야 하는 일들까지
그 모든 걸 가볍게 넘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관계를 진짜로 맺고 싶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만큼 더 신경을 쓰고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래서 모임에서 만나는 불특정 다수의 관계를 모두 같은 무게로 챙길 수는 없다.
겉도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그래서 당신은 관계에서 분명한 기준을 가진 사람이다.
타인의 시선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지금 자신에게 어떤 관계가 필요한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