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100장을 거쳐 온 당신에게

by 다결


며칠 전, 한 액셀러레이팅 기업이 주최한 글로벌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행사였고, 글로벌 투자자와 창업기업, 예비 창업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계 시장과 연결되는 네트워킹의 장이라는 설명에 걸맞게 프로그램 구성도 알찼고, 업계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행사 자체만 놓고 보면 잘 만든 컨퍼런스였다.

분위기도 좋았고, 정보도 많았고, '네트워킹'이라는 말에 이끌려 기대를 안고 온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자리는 정말 네트워킹이 되고 있을까.


사람은 많았고 정보는 넘쳐났다.

하지만 정작 지금 나에게 필요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발표는 그럴듯했고 Q&A도 이어졌지만, 대부분은 조금만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정보의 양은 충분했지만, 정보의 깊이는 얕았다.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런 자리는 그냥 인맥 쌓는 거죠. 너무 깊게 기대할 필요는 없어요." 솔직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질문이 더 분명해졌다.

우리는 네트워킹을 통해 정말 무엇을 얻고 있는 걸까.

그리고 진짜 네트워킹이 되는 자리는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 네트워킹이 되는 자리는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런 자리는 흔하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네트워킹이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는다.

그곳은 성공담을 늘어놓는 자리가 아니다.

같은 수준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화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고, 불필요한 포장은 필요 없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몇 마디 대화만으로 서로의 맥락과 판단 기준이 드러난다.

정보는 발표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오간다. 조언은 훈계가 아니라 경험의 공유에 가깝다.


형식만 보면 그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자리다.

하지만 대화의 밀도는 다르다. 말의 무게가 다르고, 침묵의 의미도 다르다. 그래서 그런 자리에서는 명함이 필요 없고, 굳이 관계를 '만들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네트워킹을 가장 크게 외치는 자리일수록 정작 네트워크는 남지 않는다.

대신 피로만 쌓인다.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사실만 남고, 다시 연락할 이유는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진짜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자리에서는 연결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미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네트워킹이 필요한 사람일수록 행사장을 부지런히 옮겨 다니기보다, 어디에 머물지, 누구와 같은 테이블에 앉을지를 더 신중하게 선택한다.


네트워킹은 기술이 아니라 환경이고,

사람의 수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다.


만약 당신이 사람은 많은데 남는 것이 없다고 느껴왔다면,

아직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의 자리에 도착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생각보다 조용한 곳에 있다.


연결은 많아졌지만,
이제는 관계를 남기고 싶어졌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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