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9 #일일일그림
주일학교 교사를 제법 오래 했다. 이십 대의 나는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버스를 타고 성당으로 달려와 회의하고, 수다 떨고, 공부하고, 가위질하고 풀칠하다 밤이 깊어서야 집에 가던, 그야말로 회합실 죽순이였다. 그 공간에서 이뤄진 수많은 행동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리가 말을 마치는 방식이었는데, 둘러앉은 자리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할 때면 으레 그러려니 하는 것이었다.
우선 말하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다 마칠 때까지 아무도 끼어들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행복합니다”하고 박수를 한 번 짝 친다. 그러고 나면 다음 사람 차례.
그런 것이 좋았다. 어영부영 말끝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다음 사람이 눈치를 살피지 않게끔 나의 이야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 사랑을 고백하는 말이라는 게. 맞장구 없이, 핀잔도, 어떤 개입도 없이 모두가 입을 꼭 다물고 듣고 나서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모인 것이 여섯 명이라면 여섯 번의 사랑을 듣는다. 열 명이라면 최소한 아홉 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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