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오늘이 Feb 12. 2024

줄리앙은 인어예요

리뷰 <인어를 믿나요?> 제시카 러브, 웅진주니어, 2018



어린이책에는 어린이의 욕망이 담겨있다. 

사랑에 대한 욕망, 모험에 대한 욕망,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망 등 어린이의 다양한 욕망이 글로 서술된다. 글보다 그림이 주가 되는 그림책에서는 인물의 동작과 표정을 통해 욕망 그려내고 있다.



백희나작가의 <알사탕>에서 동동이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 강한 인물로 표정은 주저함이 가득하고 어깨는 축 처져있다. <장수탕선녀님>에 나오는 덕지는 모험에 대한 욕망이 강한 인물로 곧게 편 척추와 표정에서 나타난다. 

이수지작가의 <파도야 놀자>에서 세상에 맞서는 여자 아이는 파도 앞에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서서 혀를 쏙 내밀고 있는 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제시카 러브의 <인어를 믿나요?>는 자신을 인어라고 말하는 줄리앙을 통해 성정체성과 자기답게 행동하고 싶은 욕망을 표현했다. 원 제목은 '줄리앙은 인어예요'다.



인어를 좋아하는 줄리앙.

할머니와 수영을 마치고 집에 가는 전철에서 인어 분장 한 여자들을 보게 된다. 줄리앙은 자신이 분홍색 지느러미가 달린 인어가 되는 상상을 한다. 상상 속에서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기도 하고 파란색 물고기에게 목걸이를 선물로 받는다.





집에 온 줄리앙은 할머니가 목욕하는 동안 야자수 풀과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립스틱도 바른다. 뭔가 빠진 것 같은 생각에 줄리앙은 노란 커튼을 떼어서  웨딩드레스의 끝자락처럼 길게 늘어트린다. 인어로 치장한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러운지 한쪽 손을 높이 들고 배를 한껏 내밀고 있다. '나는 인어예요.'라고 크게 외치는 듯하다. 





그때 목욕을 마치고 나온 할머니는 그런 줄리앙을 화난 얼굴로 쳐다본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이다. 할머니 표정을 의식한 줄리앙의 몸동작은 엉거주춤하다. 그림책 안에서 고요와 정적이 흐른다.



줄리앙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할까? 할머니는 줄리앙에게 어떤 말을 할까?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남자 녀석이 계집애처럼' 이런 말을 해서 줄리앙을 아프게 하는 건 아닐까? 등 많은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휙 뒤돌아 방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줄리앙. 어깨가 처져있고 하늘 높이 올려져 있던 손은 힘없이 내려져 있다. 줄리앙은 할머니가 왜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봤는지 자신의 모습을 살핀다.

인어로 치장할 때는 사회가 규정한 남자다운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했다. 밝은 표정과 큰 몸동작을 보면 줄리앙이 얼마나 만족하고 행복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들킨 후로는 표정은 생기를 잃고 몸동작도 가늘고 위축되어 있다.



조금 뒤 방에서 나온 할머니가 줄리앙에게 내민 것은 목걸이였다.

"너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줄리앙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한마디다. 파란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의 모습은 줄리앙이 인어가 되는 상상 속에 나온 파란 물고기를 연상시킨다. 





줄리앙은 할머니와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온다. 코니아일랜드 머메이드 퍼레이드에서 양팔을 앞뒤도 저으며 씩씩하게 걷는다. 그 뒤에 할머니가 웃으며 뒤따른다. 할머니는 줄리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멋진 어른이다.





어린이의 욕망중 가장 큰 욕망은 자기답게 행동하고 싶은 욕망이다. 사회에서 규정한 성이 아니라, 엄마 아빠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가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몸으로 표현하고 말하고 싶은 욕망 말이다.



우리 아이들도 줄리앙처럼 인어들의 행렬에서 양팔을 흔들며 힘차게 걷듯 자기답게 살기를,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멋진 사회가 되기를 꿈꿔본다.













작가의 이전글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