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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운 Jan 21. 2020

선인장 화분 속 남자

제1장. 선인장 화분 속 남자(1)

[선인장 화분 속 남자]















제1장. 선인장 화분 속 남자















그가 떠나간 뒤에도 미현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여러 취미 생활을 즐기는 평범한 일상들. 그렇기에 ‘일상’이라 하는 거겠지. 하지만 거기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는 듯했다. 한 가지가 말이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글을 쓸 때도 그러고 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미현은 인정할 수 없는지 몰랐다. 그것이 ‘그’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가 한 선택의 결과를 말이다.







물론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알고 있는 듯했다. 이 텅 빈 마음의 정체를. 그렇기에 일상을 영유할 수 있는지도.







계절이 한 바퀴 돌아 어느덧 벚꽃이 만개한 봄이 다시 찾아 왔다. 미현은 여느 날처럼 글을 쓰다가, 생각 보다 풀리지 않자 잠시 망설이다 집 밖으로 향했다.







평소와 달리 집 근처 공원은 화창한 오후를 맞아 벚꽃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사람 많은 걸 질색하는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싫지가 않았다.







“너 맞지? 너구나!”







벚꽃이 늘어진 하천가를 걷던 미현은 앞에서 오던 얼룩덜룩한 색의 한 마리 개를 보고는 반가워하였다.







일 년 전 그, 수현과 함께 봤던 강아지 시츄였다. 무심한 시간처럼, 작은 강아지도 어느덧 성견이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인의 허락을 받아 개를 쓰다듬던 미현은 이상한 느낌에 앞을 바라봤다.







“잘 지냈어요?”







잘 지낼 수 있었을까.







미현은 갑작스러운 지금처럼, 일 년 전 그날을 회상해 보았다.







‘딩동’







머리를 싸매고 글을 쓰던 미현은 갑작스레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오늘은 아무도 방문할 사람이 없는 날이었다. 그래서 잡상인이라 여긴 그녀는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무시하고는 다시 글에 집중했다. 그런데 꽤 끈질긴 잡상인이었다. 미현이 무시했음에도 그는 문까지 두드려 가며 그녀를 호출하고 있었다.







“누구세요!”







차가운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퍼져나갔다. 그러자 문밖에 있는 사내가 주춤하며 입을 열었다.







“안미현씨 되시죠? 택배입니다...”







“택배 올 거 없는데요?”







다시 한번 박히는 차가운 말에 남자가 침을 꼴깍 삼키고는 용기를 내 말을 이어나갔다.







“글 출판사라고...”







“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미현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







문을 열고 택배 기사가 건넨 선인장 화분을 받은 미연의 표정이 아연실색해지고, 그녀의 눈치를 보며 남자가 슬금슬금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다.







일단 화분을 집안으로 들인 미현은 핸드폰을 들고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해서 ‘감사합니다. 잘 지내세요’로 끝나는 문자 한 통. 아무리 선물이 마음에 안 든다 한들, 계약 기념으로 감사 선물을 보낸 담당자에게 인사치레는 남겨야 할 듯해서였다.







미현은 집안에 놓인 유일한 화분인 선인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화분이란 말도 안 되는 물건이었다. 선인장마저 죽이는 그녀였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죽지 말렴!”







주문처럼 책상에 놓인 선인장의 건투를 빌며 물을 주던 그때였다. 갑자기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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