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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Oct 12. 2023

쉬었다 가세

‘늙은 산 노을 업고 힘들어하네.

벌겋게 힘들어하네.

세월에도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하얀 구름 한 조각.

 여보게 우리 쉬었다 가세.

남은 잔은 비우고 가세.

가면 어~때 저 세월,

가면 어때 이 청춘,

저녁 깔린 뒷마당에 쉬었다 가세.

여보게 쉬었다 가세.’


https://youtu.be/AEEoWs8A_wk?si=XV0_JY3JhNCvvo4d


나훈아의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이라는 노래의 첫 번째 소절이다. 가사를 곱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청춘을 불사른 우리 모습을 늙은 산, 늙은 소로 비유하고 열심히 살다 늙었으니 쉬었다 가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그런 모양이다.


종합상사가 우리나라 수출을 주도하던 때였다. 종합상사는 업무 특성상 전 세계 각지에 지사와 사무소를 두고 누구보다 빨리 정보를 거둬들였다. 시황이나 환율 변동을 남들보다 빨리 포착하면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종합상사들은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고, 관리에 신중했다. 이런 시기에 종합상사 등을 찾아다니며 소위 ‘종합상사의 정보전략’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던 이가 있었다. 종합상사맨조차 ‘정보전략’이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무척 앞서간 인물인 셈이다. 그는 종합상사의 대리나 사원급 직원들과 많은 접촉을 했었다. 10여 년이 지난 후 그는 기업의 정보전략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반면, 그에게 종합상사의 정보전략에 관해 설명(?)했던 사람들은 그가 주최하는 세미나 등에 참여하여 정보의 가치에 관해 배우는 처지가 되었다.


비슷한 경우를 최근에도 겪었다. 얼마 전, 100년이 넘은, 귀하디 귀한 산삼이 한 달에 한 번꼴로 발견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본 것이 계기다. 그렇게 발견된 산삼을 감정한 사람은 동일인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산삼들이 지리산이나 덕유산에서만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강원도나 경기도 등의 깊은 산에서 캤다는 삼은 없었다.


마침 주변에 난치병을 치료하려고 젊어서부터 약초나 산삼을 캐러 다닌 지인이 있었다. 오랫동안 난, 약초 그리고 삼을 캐면서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다. 산삼에 관해 풍부한 지식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지인에게 산삼에 대해, 그 감정인에 관해 물었다. 그는 감정인을 아주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고 불신도 깊었다. 감정인은 아주 오래전 지인이 산삼 강연할 때 참석하여 공부하던 애송이였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지인은 여전히 무명의 산삼인으로 남아있는데 애송이는 전문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운 듯했다. 그는 감정인을 사기꾼이라고 표현하며 적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발견된 100년 이상의 산삼을 그 사람이 모두 감정했다는 사실이 미덥지 않기는 했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모양이다. 정보를 쫓아다니던 사람은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정보전문가가 되었고 저명인사가 되었다. 산삼을 공부하려고 강연장을 쫓아다니던 사람은 내로라하는 산삼전문가가 되었다. 반면 그들이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은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약간의 발전만 있을 뿐 명성을 얻지는 못한 것이다. 그들에게 뒤처졌다고 화가 났을까? 처지가 바뀌어서 미워하게 됐을까?


늙은 산처럼, 늙은 소처럼 힘들어하지 말고 세월에도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처럼 쉬었다 가면 어떨까? 쉬다 보면 미워하는 마음도 사라지고 화난 마음도 사그라지지 않을까? 그렇다고 너무 푹 쉬지는 말고. 한때 나보다 못했던 사람이 나보다 나아졌어도 힘들어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듯한 대중가요 한 소절을 혀에 굴리며 ‘그나저나 나는 어느 쪽이지?’ 하며 웅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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