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도난 Jan 11. 2024

내가 쓰고 내가 연기하는 아주 짧은 드라마 (3)

「언덕의 바리」

「언덕의 바리」를 관람하다


2024. 1월 6일. 「언덕의 바리」 공연 첫날이다.  사부가 출연하는 연극을 본다고 마음이 급했는지  대학로 예술극장이 아닌 아르코예술극장으로 다. 시작부터 꼬였지만 덕택에 또 하나의 공연장을 알게 됐고, 이 날을 기억할 수 있는 촉매도 갖게 되었다.



무대가 특이했다. 계단형 객석의 가운데는 연극의 주요 배경인 '언덕'으로 꾸며 놓았다. 갈대가 있고, 언덕을 오르는 길이 있고 언덕 위 허공에는 나룻배도 매달아 놓았다. 대신 객석은 무대 위로 올려놓아 마당극을 보는 것처럼 무대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관람하게 했다. 이런 배치로 배우와의 거리가 가까워져 숨소리는 물론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지지 않은 독립투사, 안경신


「언덕의 바리」는 독립운동가 ‘여자폭탄범 안경신’의 이야기를 다른 연극이다.  안경신 선생은 항일 무력 투쟁에 매진한 공을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선생은 1888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출생했다. 1919년 ‘3·1 운동’ 이 일어났을 때 평양에서 만세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뒤 같은 해 11월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20년 초, 동지 106명이 일본경찰에 잡히자 김행일을 따라 만주로 몸을 피했다가 1920년 8월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 만삭의 몸으로 평안남도 경찰국에 폭탄을 투척했다. 이어서 평양시청 및 평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불발되었다. 일본 경찰에 쫓기던 선생은 1921년 3월에 붙잡혀 10년 징역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다 7년 후 가석방되었다. 감옥에서 나온 선생은 영양실조로 눈이 먼 아들을 만나 함께 종적을 감췄다.



시놉시스


연극은 안경신이  임신한 몸으로 항일 투쟁에 나서는 순간과, 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뒤 조사를 받는 과정 등을 꿈과 현실을 오가며 보여준다. 경신은 꿈속의 언덕에서 배를 태워주는 소년을 만나 감옥에서 모진 고문으로 죽어간 여자들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3·1 운동이 실패로 끝난 다음 해, 애국부인회 교통부원 경신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온 덕진에게 모금한 돈을 건네며 자신 역시 의혈투쟁에 가담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현재에 충실하라는 충고를 받는다. 그 무렵 평양기생 명희와 조선인 경찰 현강에 의해 애국부인회가 검거된다. 경신은 명희의 도움으로 검거를 피해 일본과자점에서 일하며 단독투쟁을 모색하다가 아편밀매를 하는 행일을 만나 상해로 간다.


경신은 행일과 동거하다 덕진을 다시 만나 광복군 총영대원을 자원한다. 임신한 몸으로 훈련을 받고 폭탄운반을 했던 경신은 거사 당일 출산 기미를 느끼고 명희의 집에 몸을 숨긴다. 명희는 폭탄보다 아이를 지키라며 경신을 설득하지만 경신은 거사에 가담한다. 거사에 실패하자 경신은 동지들을 달아나게 한 후 혼자서 다시 폭탄을 던졌지만 도화선이 비에 젖어 불발되고 현강에게 체포된다. 일본인 검사에게 조사받으며 경신은 자신은 연약하고 무지한 어미일 뿐 폭탄범은 아니라고 진술하는데….



바리와 안경신 그리고 언덕


경신은 고문으로 죽어간 여인들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를 원다. 독립운동에는 실패했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맹세한 무속인들의 신(巫祖神), 바리의 마음가짐과 맥이 닿는다. 그래서 작가는 그녀를 실패한 독립운동가라고 평가하면서도 바리와 대비시킨 모양이다.


그렇다면 덕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곳에서 경신은 언덕을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고문으로 죽어간 여자들을 구할 방법을 찾으려 했을까? 그보다는 자기 때문에 아들이 영양실조로 눈을 잃었다고 자책하며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잊고 어미로 살아가려는 시발점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독립운동가 안경신을 바리와 연결(?)시키면서도 여성독립운동가의 비극적 결말에 관한 이야기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형적 서사도 아니라고 했다. 이런 작품 의도는 관객들에게 전달되었을까? 작가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한 탓에 내겐 너무 어려운 연극이다.


서설이 내렸다


연극이 끝났을 때 대학로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묘하다. 나이가 들어도 내리는 함박눈을 보면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지니 말이다. 공연을 마친 용과까지 합류하여 우리 일행은 함박눈이 내리는 대학로에서 먹고, 마시고 즐겼다.


이날 젊고 재능 있는 작가를 발견하게 되어 더욱 즐거웠다. 외모는 물론 심성까지 고운 데다 재능도 많은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즐겁고 흥겨웠던 이날, 1월의 첫 함박눈은 늦은 밤까지 서설이 되어 내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잃은 사랑인가 잊힌 사랑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