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영화를 관람하기 좋은 세상이다. 예전에는 영화배급사가 수입한 영화나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만 볼 수 있었다. 그 영화들마저 극장에 가거나 TV에서 「주말의 명화」 혹은 특별한 날에 「특선 대작」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제약은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등 OTT(Over The Top)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어느 나라에서 제작되었든, 어느 시대에 제작된 영화든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골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덕택에 예전 같으면 접근하기 어려웠을 폴란드 영화 『포가튼 러브(Forgotten Love)』를 감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포가튼 러브』는 타데우시 도웽가 모스토비치의 「돌팔이(Znachor)」가 원작으로 실화가 아니면서도 이를 능가하는 감동이 있는 영화다. 1937년에 처음 제작된 뒤 1982년에 리메이크되었고, 2023년에 다시 한번 리메이크되었다. 그만큼 뛰어난 작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영화는 1930년대 폴란드 시골 정취와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한순간에 기억과 명예 그리고 아내와 딸을 모두 잃고도 사람을 향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 한 남자의 슬픈 인생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외과 의사이자 저명한 뇌과학자인 라파우 빌추르는 돈보다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우선하는 사명감 있는 의사다. 빌추르는 성공한 의사로 명성도 얻고 부도 일궜으나 그의 아내 베아타는 가정에 소홀한 남편에 실망하고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 빌추르가 과장으로 승진한 날, 사랑하는 딸의 생일이기도 한 그날, 케이크와 선물을 사서 귀가한 빌추르는 아내가 딸을 데리고 내연남의 집으로 떠난 것을 알고 좌절한다. 아내의 행방을 어림짐작한 빌추르는 친구인 의사 도브라니에스키에게 도움을 청하고 예상 장소로 향했다가 강도에게 머리를 맞아 쓰러지면서 기억을 잃는다. 빌추르의 요청을 받고 나타난 의사 도브라니에스키는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도 못 본 척 사라져 버린다. 현장에서 외투만 발견되자 경찰과 언론은 아내의 스캔들에 충격을 받아 빌추르가 자살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마무리한다.
15년이 지난 어느 날, 기억을 잃은 빌추르는 안토니 코시바라는 이름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시골길을 지나던 빌추르는 마차에서 떨어진 마부의 팔과 마차를 고쳐 준 인연으로 조시아의 제분소에서 일하게 된다. 빌추르에게 호감을 느낀 조시아는 그가 뛰어난 의술을 지녔음을 알고 제분소의 일부를 진료소로 개방하여 환자들을 돌볼 수 있게 해 준다.
그 무렵 마을 주점에서 피아노를 치며 일하고 있는 마리시아를 본 빌추르는 본능적으로 끌림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집을 떠난 아내가 데리고 나간 친딸이었다. 백작의 아들 레셰크는 주점에서 일하는 마리시아에게 반하여 사랑에 빠진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백작 부인은 둘 사이를 떼놓으려고 빌추르가 무면허 진료행위를 하고 있다고 고소한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마리시아와 레셰크, 빌추르와 조시아가 합동결혼식을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의사로서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아버지의 사랑을 섬세하게 연기한 빌추르(레섹 리호타 扮)가 무척 인상적이다. 영화의 감동은 대부분 그에게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영화가 끝나자 궁금증이 든다. ‘포가튼 러브’는 잊은 사랑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잊힌 사랑이라는 뜻일까? 그도 저도 아니라면 잃은 사랑일까?
『Forgotten Love』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신조로 의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게 살아온 빌추르가 잊힌 딸을 찾고, 딸 덕분에 잃은 기억도 찾는 가슴 훈훈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