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축의금을 둘러싼 잡음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비혼을 선언한 어떤 이가 ‘나중에 번거롭게 비혼 선언하고 축의금 돌려받느니 처음부터 안 내겠다.’라는 말을 동호회에 올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퇴직한 지 5년이 넘은 어떤 이는 경조사비는 상부상조(Give and Take)의 개념이 있다며 ‘결혼 축의금’을 안 한 사람들한테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보내 독촉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낯선 사람들을 아름다운 인연으로 맺어주었는데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 같아 월하노인(月下老人)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옛날, 중국에 위고라는 남자가 있었다. 산책하다 붉은 실이 가득한 포대를 옆에 두고 달빛 아래에서 책을 읽는 노인을 발견했다. 위고가 궁금해서 ‘그 많은 붉은 실은 어디에 쓰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노인은 ‘이 붉은 실에 남녀가 묶이게 되면 결국 부부가 된다네.’라고 대답했다. 위고가 반신반의하자 노인이 애꾸 여인이 안고 있는 세 살쯤 되는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저 아이가 자네의 아내가 될 사람이네.’라고 말했다. 그 말에 화가 난 위고는 하인을 시켜 여자아이를 죽이라고 명했다. 14년 후. 위고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고 많은 사람이 그를 사위로 삼고 싶어 했다. 그 가운데 미간에 상처가 있는 딸을 둔 왕태라는 사람이 있었다. 위고가 사연을 묻자 ‘14년 전에 유모가 아이를 안고 시장에 갔다가 어떤 미친놈의 칼에 찔렸는데 요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상처가 생기게 되었다네.’라고 대답했다.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위고는 자초지종을 말하고 왕태의 딸과 결혼했다. 월하노인의 붉은 실이 두 사람을 인연으로 맺어준 것이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귀덕(정영숙 扮)과 큰 며느리 혜란(조은숙 扮), 작은 며느리 인숙(김지영 扮) 사이의 갈등과 애증을 보여주는 「인연을 긋다」라는 영화가 있다. 귀덕은 남부럽지 않은 친정을 둔 큰 며느리는 딸처럼 아끼고, 변변치 않은 친정을 둔 작은 며느리는 무시하고 홀대한다. 끔찍했던 시집살이를 피해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났던 작은 며느리 인숙이 20년 만에 귀국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 세월 동안 자존심 세고 표독스러웠던 시어머니는 치매에 걸렸고, 착하디 착했던 큰 며느리는 모질고 까칠하게 변했다. 혜란과 인숙은 남편들을 대신해서 시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간다. 그 불편한 동행에서 세 사람은 감추어둔 속마음을 꺼내 보이며 심하게 다툰다.
영화를 연출한 이정섭 감독은 ‘인연을 긋다’가 ‘인연을 잇는다’라는 뜻도 되고, ‘인연을 끊는다’라는 뜻도 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원수보다 더 원수 같아 보였던 세 사람에게 ‘긋다’는 ‘잇는다’ 일까 ‘끊는다’ 일까? 아들을 매개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동서라는 관계로 붉은 실에 묶인 세 사람의 인연. 과연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다.
총각이었던 어느 해, 평생의 반려가 될 여인을 소개받았다. 첫인상이 매우 좋았고, 마음 씀씀이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첫눈에 반해 버렸다. 더욱 극적인 것은 그녀는 원래 소개받기로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친구를 대신해서 나왔다가 인연을 맺은 것이다. 이날은 ‘인연을 긋다’가 내게는 ‘인연을 잇는다’로 다가온 날이 되었다. 이것도 월하노인의 안배였을까?
붉은 실은 나와 아내를 하나로 묶었고, 두 아들을 데려왔다. 그 붉은 실의 다른 쪽 끝에는 어떤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왕이면 붉은 실과 파란 실을 섞어 꽁꽁 묶인 그런 인연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