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우리나라 유통업의 양대 산맥을 유지했던 신세계그룹의 이마트와 롯데그룹의 롯데마트가 위기를 맞고 있다. 이커머스(eCommerce, 전자상거래)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매출이 줄고, 적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로 2023년 한 해에만 이마트 종업원은 549명, 롯데마트는 417명이 줄었다. 특히 이마트는 ‘저비용 구조를 통한 수익성 개선’을 목표로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받기로 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비용 감축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이라도 하는 듯한 기사가 신문에 보도됐다.
직장인 A 씨는 조카 옷 선물을 고민하다가 백화점 상품권을 전달했다. 원하는 옷을 맘껏 고르라는 취지였는데, 조카의 반응이 의외였다. A 씨는 “조카가 머뭇거리더니 ‘백화점에서 옷을 사본 적이 없다’라고 하더라”며 다들 쇼핑 앱에서 옷을 사고, 사고픈 브랜드도 앱에 있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백화점은 푸드 코너만 가봤을 뿐 쇼핑을 해본 적 없다는 말에 상품권을 다시 가져오고 대신 앱에서 옷을 고르게 한 후 구매 비용을 결제해 줬다. A 씨는 “옷 쇼핑만큼은 직접 고르는 재미가 있다고 여겼는데, 요즘 10·20세대에게는 전혀 다른 문화인 것 같다.”라고 했다.
쇼핑 행태의 변화가 10·20세대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아니다. 2023년을 기준으로 이커머스 사용자는 10대와 60대 이상은 4% 수준이지만 20대에서 50대까지는 20% 수준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세대 차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Forbes, 2023.05.23.
흥미로운 것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유통업과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는 점이다. 먼저 선거를 치르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을 알아보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한 지역구 후보별 선거비용 제한액을 1인당 1억 8천만 원 수준으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2억 2천여만 원으로 제한했다. 이는 공식적인 숫자이고 실질적으로는 이보다 월등히 많다는 게 중론이다. 선거비용은 선거사무실 임대료, 인건비, 유세차 렌트비, 공보물 인쇄비, 현수막 설치비 및 언론 광고비 등에 주로 지출된다. 지역구 후보가 지출하는 이런 비용들 가운데 비례대표 후보가 지출할 비용은 어떤 것일까?
이런 저비용 때문인지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 후보만으로 원내 진입을 노린 정당이 무려 38개나 됐다. 마치 이커머스 업체들이 잘 만든 홈페이지에 상품 사진과 설명을 올려놓고 구매를 기다리듯 선거 홍보물만 나눠주고 선택을 기다린 것이다. 이 가운데 4개 정당이 비례 대표에게 배정된 46석을 나눠 가졌다. 유권자들에게 연설 한 번 안 하고 선거 홍보물만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46명이라는 얘기다.
혹시 제22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만으로 국회 교섭단체가 꾸려질 수 있을까? 흥미롭다. 성사된다면 유통업계에서 신세계와 롯데라는 양대 공룡이 이커머스 업체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듯 거대 양당 체제에 균열을 가져오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테니. 더 나아가 ‘저비용 구조를 통한 수익성 개선’을 목표로 이마트가 변신을 꾀하듯 ‘저비용 구조를 통한 효율성 개선’을 목표로 비례대표 비중을 높이거나 모두 비례대표로 선출하면 어떨까? 이커머스 업체들이 상품에 하자가 있을 때 손쉽게 반품, 교환해 주듯 하자 있는 비례대표 의원도 손쉽게 교체하도록 하고. 이렇게 하면 자기 지역구에서 투표하지도 못하는 후보, 지역구 사정을 전혀 모르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당혹스러움도 피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막말하는 후보는 어떡하지?
‘백화점에서 옷을 사본 적이 없다’라는 젊은 세대들이 더 가성비가 높은 이커머스 업체에서 옷을 사듯 ‘지역구 후보’ 대신 가성비 높은 ‘비례대표 후보’를 뽑을 방법은 없을까? 효율이 낮은 거대 양당 체제가 다양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커머스 정당 체제로 바뀔 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