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중심형 사고 방식의 한국사회에 대한 작은 반란글.
한국에선 메르켈이 보수파임에도 탈원전의 결단을 내린 리더십이 부각돼 왔다. 16년간 총리직을 재임한 메르켈의 퇴임을 앞두고 이런 관점은 더욱 부각된다.
그런데, 지도자 중심형 사고를 넘어선다면 해석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탈원전을 둘러싼 정당 간, 시민사회 내 치열한 갈등이 점차 조정되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충격파가 던져진 과정에서 메르켈이 차마 탈원전을 거부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아마 거부했을 경우 역사의 장은 어떻게 쓰였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메르켈이 8년 재임 총리로 남았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메르켈이 실각했었다면 다음 총리, 집권세력은 곧바로 탈원전했을 선택했을 듯.
난 독일의 탈원전에 대해 메르켈이 아니라 이전 연정 참여 등을 통해 꾸준히 탈원전을 주장해온 녹색당, 이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 거리로 쏟아져나와 탈원전을 외친 수십만명의 독일 시민들을 주목하고 싶다.
슈뢰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뒤엎어 버린 메르켈 총리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잇따라 패배하자 다시 노선을 전환했다.
녹색당이 급부상한 상황이었다. 녹색당의 상승세에 이듬해 총서에서 녹색당이 총리를 배출하는 것 아니냐는 섵부른 전망까지 나올 정도였다.
메르켈과 집권세력은 내부 반발이 있었지만, 내부 반발만 고려했다가는 다음 총선때까지 탈원전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에 탈원전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가 임계점에 달하고 있었다.
2011년 2월 수십만명의 시민이 베를린과 함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 쏟아져 탈원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결국 연정 내각은 2011년 5월 말 탈원전을 결정했다. 슈뢰더 총리 때의 정책으로 회귀한 것이다. 사회민주당이 연정 다수파였던 슈뢰더 정부에서도 연정 소수파인 녹색당이 탈원전을 주장해 사회민주당도 수용했었다.
이 과정에서도 사회민주당은 장기적인 원전 폐쇄를 주장해 녹색당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으나 타협 끝에 2000년 6월 20년 내로 탈원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독일의 탈원전은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조정한 가운데 나온 산물이다. 메르켈의 리더십도 한몫했지만, 탈원전으로 향하는 거대한 흐름이 이미 형성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