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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빈 Mar 06. 2021

'베를린 소녀상' 한국 정부의 역할, 없어서 좋았다.

<램지어 사태를 지켜보다 보니 한국 정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논란이 일어나네요. 지난해 12월 동북아역사재단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던 내용 중 '한국 정부의 역할 부분만 떼와 발행해봅니다.>


◇ 정부의 역할, 없어서 좋았다. 

지난 10월 프랑크푸르트총영사 국정감사에선 한 여당 의원이 베를린 소녀상 문제로 총영사를 강하게 질타했다. 관련 유튜브를 보면 '버럭'이라는 자막이 표현돼 있다. 댓글도 해당 여당 의원을 응원하며 외교부와 주독 한국대사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일색이었다.

정부의 역할은 어때야 했을까. 한국 외교부는 베를린의 소녀상 설치 직후 일본 각료들이 잇따라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며 독일 정부를 상대로 압박해 들어간 이후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소녀상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는 애초 시민단체, 시민사회의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있었던 상황에서, 아무리 현 정부가 당시의 합의 내용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외교적으로 이를 뒤집을 수는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주독 한국대사관은 특히 소녀상 철거 명령 국면에서 여론의 압박을 많이 받았다. 한국대사관은 역시 시민단체의 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한국대사관은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 같았다. 최소한 독일 외교부의 입장을 확인하며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중립을 지키도록 압박하지 않았을까. 철거 명령 가처분 신청과 관련한 법적 절차 등을 알아보며 시민사회에 조언하지 않았을까. 이 발표문도 공식적인 행사의 일부이기 때문에 소녀상 지키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취재 내용을 모두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상상에 맡겨본다. 

소녀상 철거 명령 국면에서 연방하원의 녹색당 한 의원이 정범구 한국대사에게 한일 대사관 간의 중재 테이블을 만들 테니 함께 논의해보자고 비공식적으로 제안한 일이 있었다. 이를 받아들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시민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그 순간 베를린의 소녀상 설치는 반일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한일 간의 외교적 분쟁 사안으로 변질된다. 물론 정 대사는 이를 정중히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 철거명령 보도 직전 외교부는 왜 일본 비판 브리핑을

그러면 정부의 입장은 어느 정도까지 공식적이고, 어느 선까지 움직여야 할까. 

주독 한국대사관이 베를린 당국의 '철거명령' 내용을 알게 된 것은 베를린 현지 시각으로 7일 저녁 시간 즈음이다. 대사관은 긴급 사안인 만큼, 당연히 밤 시간이라도 외교부 본부로 전문을 보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새벽 시간대다. 

그런데 외교부 대변인은 그로부터 반나절이 이상이 지난, 한국 시각으로 8일 오후 1∼2시께 독일 측을 상대로 한 일본 장관들의 '철거 요구'를 비판한 브리핑을 했다. 일본 측이 공개 요구를 한 지 일주일 이상 지난 시점에서였다. 

브리핑 내용을 보면 '철거명령'이 반영되지 않고, '독일에 철거하라고 일본이 압력을 넣고 있는 중'이라는 상황을 전제로 '일본의 시도'를 비판한 브리핑이다.

아직 '일본의 시도'가 성공한 '철거명령' 기사는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 발표자는 7일 오후 관련 사실을 알았지만, 공문 내용을 분석해 대응 논리를 우선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시민단체 측의 요청에 기사를 보류하고 있었다. 한국시간 오후 6시께 기사를 쓰기로 했다.

왜 외교부는 기사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독일 측의 철거 명령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의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마치 철거 명령은 모르는 듯 브리핑을 하며 일본을 비판했을까. 몇시 간 후 철거명령 기사가 나온 뒤에는 상황이 급변했다. 국내 여론이 독일과 일본에 대한 비판으로 들끓었다. 갑작스러운 브리핑은 여론이 들끓기 직전에 그동안 침묵해오던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나마 그나마 외교적 견제구를 날렸다는 표식을 남겨둔 것으로 봐야 할까. 

사실 정부가 일본 정부를 견제하려 했다면, 철거 명령 한참 이전에 했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더 독일 외교부, 베를린시에 대한 일본의 로비에 방패막이 역할을 다소 했었을 것이다. 외교부의 브리핑은 철거 명령을 내린 독일 당국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 서두른 면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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