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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오르지 Jan 14. 2024

의약품 허가로 세상을 구하다.

약담화

미국은 바이오 제약 분야에 절대적인 선두주자입니다. 

매출규모, 기술력, R&D 투자 비용 모두 세계 1등입니다. 2021년 미국의 제약 산업 매출액은 5,900억 달러이고, 세계 10대 제약사 중 절반은 미국 기업입니다. 유럽 전체의 의약품 시장규모가 대략 3천억 달러 정도니 통계적으로 미국이 전체 유럽을 배만큼 넘어선다고 보겠습니다.


지난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 미국은 제약 기술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성과를 냈습니다. 

미국 제약사인 화이자와 모더나는 유전자조작 기술을 이용한 mRNA 백신을 개발해 전 세계에 공급했는데, mRNA 백신은 기존의 유전자재조합 백신을 생산 기술성과 효과성에서 압도했습니다. 이러한 성공의 요인 중에는 미국 행정부가 초고속 작전(OPS, Operation Warp Speed)을 통해 전방위적 지원을 한 점도 있었지만, 미국 FDA가 2020년 12월 11일 화이자 백신, 12월 18일 모더나 백신을 긴급사용승인(EUA, Emergency Use Authorization)해 미국 국민에게 접종을 허용한 점도 컸습니다.


미국 FDA의 긴급사용승인은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이 미국에서 개발한 백신을 사들여 자국민에게 사용하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WHO나 유럽연합 또한 미국 FDA가 제출받은 자료와 미국 FDA가 검토한 자료를 참고해 심사에 착수했고 결국 동일한 결정을 했습니다. 미국 FDA의 힘이 국력이 된 사례였습니다.


한편, 미국 FDA가 지금의 전 세계적인 공신력을 갖추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54년 유럽 제약사가 개발한 탈리도마이드는 진정수면의 목적으로 사용된 약입니다. 

이 약은 유럽뿐만 아니라 일본, 호주 등 전 세계 각국에서 판매되었고 한때는 아스피린보다 더 많이 사용됐습니다. 호주의 한 의사가 이 약이 임산부 입덧에도 효과가 있다는 발표를 한 이후부터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임신 초기 산모에게 처방하는 것이 유행처럼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은 미국에서 판매되지 못했습니다.

1960년 당시 미국 FDA는 탈리도마이드 허가를 검토하면서 임상시험 등 부족한 자료에 대해 수없이 보완을 요청했습니다. 당연히 시판 허가도 계속 미뤄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1961년 의학 학술지인 란셋에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산모가 심각한 상태의 기형아를 출산한 사실이 발표됐고, 비슷한 시기에 독일 신문도 탈리도마이드의 복용으로 161명의 기형아가 태어난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결국 1961년 탈리도마이드는 퇴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 컸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1만 2천 명의 기형아가 태어났고 사산아는 세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만일 탈리도마이드가 미국에서 시판허가되었다면 재앙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그간 허가했던 모든 의약품의 안전성을 재검토했고, 새롭게 개발되는 신약에 대해서는 심사 기간을 늘리고 심사 인력도 보강했습니다. 탈리도마이드는 약의 효과만을 강조했던 기업이나 전문가에게 국민의 안전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일깨워 준 중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미국 FDA는 이후에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객관적이고 전문성 있는 의약품 심사를 위한 정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은 안전성 평가를 비롯한 규제과학 기술 분야에서 전 세계 의약품 규제당국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바이오 제약 산업을 선택하고, 산업 지원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산업계나 일부 전문가들은 식약처 허가심사의 규제를 낮춰 제약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곤 합니다. 해외에서 약을 수입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해외에서 허가받은 약이고 대한민국에서 허가를 받고 품질검사를 하는 것이 중복되고 절차적 규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개발되는 신기술 의약품의 경우에도 수많은 임상자료와 품질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번거롭고 비용 탓으로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약품 관리는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간의 허가심사 방식과 절차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건드렸다가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끝으로, 규제당국에 대한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식약처는 우리나라 유일한 의약품 규제당국으로서 잘못된 결정을 하면 되돌이킬 수 없습니다. 허가 심사의 전문성을 높이고 돌다리도 두들겨 건넌다는 자세로 신중한 의사 결정을 통해 우리나라 제약산업을 선도해 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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