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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옷 Apr 03. 2019

서울러에게 새로운 감흥이란

이미 먹었던 것, 이미 봤던 것, 이미 알고 있던 것들




                      

요즘 나는 몇 가지 음식에 빠져 있다. 그중 하나가 하와이안 식당에서 파는 포케다. 회덮밥이랑 비슷하긴 한데, 초장을 싫어해서 회덮밥을 안 먹지만 회는 좋아해서 요즘 완전 꽂혀 있다. 요즘엔 카페마다 흑설탕 버블티도 난리여서, 나도 타이거슈가니 모리셔스 브라운이니 가보기도 했다. 친구들이랑 만나면 뭘 먹었더라. 최근엔 화이타를 먹었고, 지난주엔 징기즈칸을 먹었다. 점심에는 팀원들과 마라샹궈를 먹었고, 겨울에는 한창 밀푀유 나베를 많이 먹었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한식을 안 먹었냐 하면 하루 한 끼는 꼭 밥알을 씹었다. 아, 그러고 보니 밥알이라고 다 한식은 아니긴 했지만.     


먹은 걸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서울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세계 각국 나라의 식당들이 몰려 있다. 불가리아 음식점도 있고, 튀니지 음식점도 있고, 페루 음식점도 있다. 모로코 음식점도 있고, 체코 음식점도 있고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파는 곳도 있다. 네팔 음식점도 유명하고, 대만의 곱창 국수도, 아랍식 양갈비를 파는 집도 있다.     


너무 유명한 일식, 중식, 이탈리안, 프렌치,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동남아 음식을 빼더라도 내가 가본 곳만 해도 이 정도인데 안 가본 곳까지 더 하면 거의 없는 게 없지 않을까?    

  

서울이 대도시라서 그렇다고 하기엔 다른 나라의 대도시보다 훨씬 무언가가 ‘빠르게’ 들어오는 건 내 기분 탓만은 아닐 거다. 통계를 뒤져보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통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비율상 찾아본다면, 분명 ‘빠른’ 도시 중 손가락에 꼽히는 도시가 서울일 거라고 확신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해외 체인도 서울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편이기도 하고, 본식부터 디저트까지 다른 나라의 음식 종류도 꽤 외식 문화로 많이 접하는 게 서울이라고 말이다.      


‘어느 나라 음식까지 먹어봤니?’라고 물었을 때도, ‘베트남 음식 아는 종류 다 말해봐!’라고 묻는다고 해도 이탈리아 사람보다 한국 사람이 더 많이 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만난 외국인들 중 대부분은 자기들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의 음식들은 그래도 자주 접했어도 (그 나라에서 가장 싼 음식 중 하나니까 접근성이 높을 수밖에) 그게 아닌 나라의 음식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지했다.


물론 내가 아는 음식이라고 해서 여행에서 먹은 맛과 같진 않을 거다. 한국에서 먹은 아이락과 터키나 몽골에서 먹은 아이락 맛이 같을 수 없지. 터키에서 먹은 아이락끼리도 맛이 다 다른데. 레시피는 다 달라질 수 있지만, 예전만큼 ‘문화충격’ 수준으로 새로운 것은 여행에서 없다는 말이다. 특히나 우리가 ‘여행’으로 가는 나라들은 문턱이 낮은 나라들이 대부분이니까.     


이전에 본 적 없는 것을 마주할 때의 충격은 곧 새로운 감흥이 되기 마련이다. 감흥과 여운이 충격으로 지속되기도 하고.                     


음식에는 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고 말하는데 그럼 여행이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이미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으로 반쯤은 여행에 걸쳐 있는 게 아닐까? 그럼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충분한 거 아닐까?


꼭 음식이 아니라도 나는 서울과 너무 비슷한 도시들은 여행지로 매력이 잘 느껴지질 않는다. 도쿄나 뉴욕 같은 곳 말이다. 하지만 내가 70년대, 80년대에 뉴욕을 갔다면 절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마천루들과 서울에선 전혀 본 적 없는 건축들에 고개가 아플 정도로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겠지. 정말 별세계 같았을 거다. 하지만 21세기 뉴욕 여행이란 여의도나 삼성동 어디쯤에 있는 기분이었다. 특히나 뉴욕에서 유명하다는 식당과 디저트들은 모두 한국에 입점하기도 했었으니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혹시나 싶어 덧붙이자면, 물론 이 말들이 내가 전혀 문화교류가 없는 곳에 갔다고 감흥이 생긴다는 말은 아니다. 잘 안다고 해서 감흥을 느낄 수 없다는 말도 아니고 그저 너무 글로벌한 지구촌이 내 여행을 점점 감흥 없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아닐까, 하는 나름의 추측일 뿐이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 중 하나인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충분한 이유’ 중 하나라는 거다. 현지 음식을 먹어보면 어쩌고 저쩌고, 새로운 경험이 어쩌고 저쩌고 하니까 여행을 떠나라고 등 떠미는 사람에게 ‘서울에 있을 거 다 있거든요’라고. 여행이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거나 새로운 경험과 상상력이 부여되는 시절은 이미 20세기에 끝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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