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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바다 Apr 26. 2021

나는 그냥 지나가는 편집자일 뿐입니다만

당신에게 감사 인사를 건넵니다

  

지난주에 경주 시댁에 다녀왔다. 어머님이 집을 싹 수리하셨다고 해서 구경 겸 어머님도 뵐 겸 남편 손 붙잡고 내려간 거였다. 요즘 스타일인 ‘화이트톤’으로 싹 수리된 집을 보자니 내 기분도 산뜻해졌다. 시댁은 방이 세 칸이다. 한 칸은 안방, 한 칸은 우리 부부를 위한 방, 한 칸은 책들이나 피아노 같은 잡동사니가 있는 방. 집 정리를 하면서 많은 것들을 버리셨다고 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책들이 많았다. 시선이 잡동사니들을 헤매다가 오래된 책들에 꽂혔다. 내가 지금, 2021년 현재, 다니는 출판사에서 만든 책도 두 권이나 있더라.

한 권은 그 오래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표지를 보니 딱 알겠다. 어린 시절 내가 읽고 눈물을 훔쳤던 바로 그 책이다. 포르투갈 아저씨 때문에 울었던가, 오렌지나무가 잘려 나가면서 울었던가. 책의 내용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책을 읽고 벅차올랐던 느낌과 나를 둘러싼 시공간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나는 그 책을 만든 바로 그 출판사에 내가 다니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또 한 권은 찢어지게 가난한 머슴에서 미국 어느 주의 상원의원이 된 (내가 잘 모르는) 정치인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였다.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올해,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번 달에 돌아가셨다.
 



책을 볼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표지이다. 그리고 한 페이지를 넘기면 소도비라, 또 한 페이지 넘기면 목차가 나온다. 나는 이번에는 그 어느 부분보다도 먼저 판권을 보았다. 두 권의 판권에는 당연히 내가 모르는 이름들뿐이었다. 당시 이 책을 책임졌던 편집장과 편집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작가를 섭외했을까. 편집자는 이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했을까. 원고를 얼마나 수정했을까. 워낙 옛날 책이긴 하지만 글이 매끄럽고 구성도 좋았다. 사실 리라이팅 수준으로 편집자가 쓰는 책들도 있는데, 이 책은 어느 정도 손을 거쳤을지. 이 책의 제목을 지을 때 무엇을 중점으로 두고 회의했을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궁금한 게 있었다. 이 판권에 빼곡히 쓰인 편집자들은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일을 했을까. 20년 전의 그들은 그때는 어떤 편집자로 일을 했으며 지금은… 지금은 무슨 일을 할까.




독자는 평소 판권에 굳이 시선을 두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혹시나 오타와 비문이 ‘쩌는’ 책이 있다면, 항의를 하기 위해 판권을 찾는 경우는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편집자인 나는 자주 판권을 본다. 누가 책을 기획하고 편집했는지 그 흔적을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정말 유일하게 편집자의 이름이 허락된 공간이다. 물론 내가 이 회사를 떠나면 책에서 내 이름도 지워지지만.

예전에 엄마도, 아빠도, 편집자가 아닌 주위 친구들도 나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너 이름은 어디 있어?” 그러면 나는 책의 맨 뒷장의 한 페이지에 조그맣게 적힌 내 이름을 보여줬다. 이름이 작게 쓰여 있어서 억울한 마음은 정말 조금도 없었다. 무엇보다 작가의 이름이 표지에 잘 보이게 놓여야 한다. 나는 나름의 정성으로 책을 만들었고, 내 이름은 여기 ‘존재’하니 만족했다. 그 조그만 이름 석자에도 부끄러움이 덕지덕지 붙어서는 안 되니, 최선을 다해야겠지. 몇 년 전에, 판권에서 ‘책임편집’이라는 항목을 빼겠다는 회사 상사분에게 정말로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내가 책임졌다는 그 흔적은 딱 맨 마지막 페이지에 몇 글자로만 남게 되는 것이란 말이다. 아무도 그걸 손댈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거다.      




오늘도 떠오르지 않은 제목을 떠올리느라 괴로워하다가 경주에서 봤던 그 책들을, 정확히는 그 책들의 편집자를 떠올려 본다. 한 직장에서의 편집자 근속연한은 3년을 넘기지 못할 거다. 근속연한이 짧다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50이 넘도록 편집자로 살기는 힘들다는 현실이다. 더러는 출판사를 차려 성공하는 멋진 분들도 있으시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인건비 타령만 듣다가, 지나치게 엉덩이가 무겁다는 비아냥거림을 뒤에서 듣다가 그렇게 사라져 가는 편집자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수많은 직장인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직장인 편집자’로 허락된 시간이 몇 년일까. 지금 내가 하는 노력들은 이 세상에, 그리고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출판계를 쥐락펴락하는 편집자도 20년이 지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하물며 나 같은 편집자야. 하지만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당장 오늘이 의미 없으리라는 뻔한 결론에 이르렀다.

그저, 어린 나를 울렸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열심히 만들어 준 편집자에게 감사 편지를 쓰고 싶다. 이 책을 읽던 내가 서른 살이 훌~쩍 넘었다고, 어느 누군가의 손에서 소중하게 읽힐 그 책을 당신처럼 열심히 만들기 위해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다고, 수고 많이 하셨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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