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냄밍 아웃 - 냄새의 취향
프롤로그
최초의 냄새로부터
태어나자마자 맨 처음 본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나를 꺼낸 산부인과 의사의 눈일까, 어설픈 포즈로 탯줄을 자르고 엉거주춤 서있던 아빠일까? 그럴 리가 없다. 눈도 못 뜨고 태어나 울기부터 했을 테니까. 최초의 친밀감은 눈이 아니라 내 어머니의 살 냄새와 살결의 촉감에서 온다. 신생아에게 엄마 젖을 묻힌 손수건을 가까이 대면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반대쪽으로 손수건을 옮겨 가져가도 마찬가지다. 입을 오물거리고 코를 킁킁대며 엄마 젖을 찾는다. 그럼 다른 산모의 젖을 묻힌 손수건은 어떨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피하기도 한다. 내 삶의 첫 기억은 아무리 나이 먹어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 젖 냄새다.
엄마 젖 냄새부터 시작한 어린 시절이 끝나고 청소년이 되었다. 겨드랑이에선 암내가 나고 머리꼭지에선 정수리 냄새를 폴폴 풍기는 사춘기. 알코올로 가득한 위장이 구토를 시작하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매일같이 확인하는 날을 보내던 대학 언저리. 손가락에 슬쩍 베인 담배 냄새와 화장품 냄새가 뒤섞인 평범한 직장인시절을 보내고 30대가 되었다.
그럭저럭 서른 넘어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어, 드디어 내 젖을 먹는 아이의 냄새와 만났다. 엄마 젖을 먹은 아이의 입 냄새를 맡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애기똥 냄새를 맡고, 온 몸 가득 뜨거운 생명의 냄새를 맡았다. 강렬한 냄새의 기억만큼 치열했던 시간이 지나고, 어느 덧 아이에게서 젖 냄새가 사라지더니 이내 어른 똥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되었다.
꼭 그만큼 부모님이 늙어 가시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처럼 내 아이가 내 부모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하는 날이 왔다. 단백질과 호르몬의 변화 같은 과학적 이유보다 죽음의 냄새라는 감성적 이유가 더 다가와 서글펐더랬다. 노인 냄새여도 그리운 부모님의 체취가 병원 약품 냄새로 덮어질 즈음, 결국 한 분이 떠나가셨다. 지금도 먼저 떠오르는 건, 마지막에 계셨던 병원의 냄새. 소독약 냄새다.
세상은 냄새로 가득 차 있고, 냄새마다 시냅스처럼 연결된 무수한 기억과 관계들이 있다. 여기 묶은 글들은 그 조각들을 붙들고 있는 연결매듭에 관한 이야기다. 매듭을 하나하나 묶고 풀어가며 감사한 만큼, 누군가가 그 매듭에서 냄새를 맡고 자신의 조각을 떠올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